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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을 길어 머리를 감은 어머니는 손바닥만 한 거울 앞에 앉았다. 빗어 내린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이리저리 비틀어 다듬은 후 은비녀를 끼운다. 그리고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선반 위의 동백기름을 내려와 손바닥 위에 기울인다. 몇 방울을 손바닥 전체에 묻혀 머리에 바른다. 머리카락이 반짝거리며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거울을 다시 한번 찬찬히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에 만족이라는 단어가 스친다. 동백기름병을 다시 선반 위에 올려놓고 돌아서는 엄마의 얼굴이 곱다.

어머니가 아껴 둔 동백기름으로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시각에 아버지는 마당이며 골목을 쓸었다. 그 날은 삼십 리 밖 재 넘어 사는 총각이 누나 얼굴을 보러 오는 날이었다. 무슨 일에나 정성을 기울이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당신들에게 백년손님 후보가 오는 그날보다 더 귀한 날은 없었다. 부모님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손님을 그렇게 맞이했다. 최선을 다하며 정성을 쏟는 것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본을 보이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세상에서 지켜보고 계신다.

나는 반성한다. `부모님의 말씀과 행동에 공감하면서도 한낱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일 때문에 실천이 결코 쉽지 않더라는 변명은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동백기름을 사용하고도 빈병을 버리지 않고 선반 위에 올려놓으신 어머니, 몽당 빗자루를 버리지 않고 갈무리하시는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때늦기는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오랜 불효를 청산하고 싶습니다.'

동계올림픽이 다가오고 있다. 잔칫날을 앞두고 지구촌에서 몰려올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어머니의 동백기름과 아버지의 몽당비가 세월 저편에서 손짓하며 교훈을 준다. 손님을 맞이할 때 최선을 다하고 갖은 정성을 쏟는 마음이야말로 주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그것은 세상이 변한다고 해서 따라 변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강원도에 백년손님이 몰려오고 있다. 강원도를 찾는 세계인에게 가슴이 떨릴 그리움을 선물해야 한다. 그것은 정성을 다해 손님을 맞았던 어른들의 가르침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니 그것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내 그리움이 살아 있는 그곳에 가고 싶다. 동백기름과 몽당비가 그립다.

 

 




조명래 수필가 

경상북도 선산 출생으로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와 동 교육대학원 교육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예술세계' 신인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등단한 후, 수필집 '그리움에 색깔이 있을까', '이 땅에서 천사를 만나고 싶다', '보라빛 사랑', '그분은 새벽에 왔다', '버리고 가벼워지기' 5인 산문집 '3월에 내리는 눈', 수필선집 '그리운 풍경', '감자꽃'을 발간했다. 선주문학회, 경북문인협회, 영남수필문학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예술시대'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광복 50주년 보훈문예작품 현상공모 입상(국가보훈처), 제3회 공무원문예대전 우수상(행정자치부), 및 제 13회 '경북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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