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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바로크는 크로바 / 장호병

부흐고비 2021. 4. 9. 23:54

“아내를 먼저 보내니 머리에 묻습니다.”

소식 뜸했던 구순 어르신이 지난해 상처하였다면서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자식의 경우 계절마다 아픔이 되살아나지만, 배우자의 경우는 눈 뜨고, 자리 누울 때까지 발자국 닿는 데마다 함께했던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토끼풀과의 인연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그 풀은 나의 절친이었다. 나라로부터 여러 차례 효자상을 받은 아버지는 낮 동안 편찮으신 할아버지의 말동무라도 되어주라고 나의 진학을 늦추었다. 집 안팎의 토끼풀은 이른 봄부터 초겨울까지 무료한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때론 유희로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어느 들풀이 연중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으랴. 커가면서는 행운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네 잎짜리를 찾기도 하였다. 암튼 토끼풀은 나의 사랑을 많이도 받았다.

시골집 잔디밭에 토끼풀이 한 점 뿌리를 내렸을 때 반가웠다. 뾰족한 잔디 잎과 토끼 발자국을 닮은 잎. 부동이화不同而和의 표본처럼 보였다. 봄이 무르익어 하얀 꽃망울들이 부풀어 오르자 꿀벌들을 불러 모았다. 잔디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신기함은 여기까지였다.

장마가 그친 뒤 시골집에 들렀다. 얌전하기만 하던 토끼풀이 망아지처럼 잔디밭을 헤집고 다니면서 꽃대궁을 밀어 올렸다. 산지사방 뻗어 나간 줄기가 촘촘하게 그물망을 이루었다. 독일병정 같은 집요함으로 억센 잔디를 굴복시켰다.

이들을 솎아내는 일이 나에겐 곤욕이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의 작업이 수월하지는 않다. 잔디는 내가 가꾸지만, 잡초 토끼풀은 하느님이 가꾸신다. 더구나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이 풀들을 추방해야 하는,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밭 한 뙈기는 아예 이들에게 따로 허락했건만 이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내 잔디밭에 자리를 잡는다.

내 처지를 딱하게 여기는 이웃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금년 봄 나는 풀들에게 소금을 뿌렸다. 서리 맞은 듯 숨죽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몹시 아렸다.

끈질기게 뜀뛰기로 영역을 넓히고, 마침내 온 땅을 점령하지만 그들은 정직하고 순진하다. 제가 뛰어간 자리에는 ‘나 이리 지나갔소’한 듯 자국을 선명히 남긴다. 비 온 뒤 혹은 물을 취했을 땐 얼마나 얌전한지 꽃대궁이나 줄기를 당기면 순순히 원뿌리가 있는 곳을 안내한다. 소금 뿌린 일이 후회가 된다.

후회도 잠시, 비가 한두 차례 지나가자 그들은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뜀뛰기를 시작했다. 뽑힌 자리에서, 뽑혀 나간 풀더미에서 헝클어져 있었건만, ‘바로크 는크 로바’는 물기만 닿으면 다시 생생하고, 남은 것들도 이내 툴툴 털고 일어선다. 바로 읽으나 거꾸로 읽으나 ‘바로 크는 클로버’이듯 말이다.

사랑이 옆에 자리할 때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른다. 사랑이 영영 떠났다 싶어도 그 어르신의 애틋한 사랑처럼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이 ‘바로 크는 클로버’의 속성과 다르지 않다.

부부의 사랑은 몸이 시간으로 쌓고 쌓은 일상의 습관이자 패턴이다. 몰론 몸은 모음의 준말로 신체와 마음의 기능을 모았다. 그래서 사랑이 떠난 자리는 쉬이 아물지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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