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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히크 에트 눙크 / 장호병

부흐고비 2021. 4. 10. 00:00

기도 아닌 삶이 없다.

노력에 비해 결과가 빈약하지 않으면 좋겠고, 번 돈 중에서 저축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지출이 없으면 좋겠다. 자녀들 또한 학원 근처에는 가보지 않아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오죽 좋았으랴. 이웃들이 나를 향해 엄지를 세워준다면 이 또한 살맛 나는 일이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기도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간다. 기도는 지나치게 분산되어 있을 뿐이지 기도에 닿지 않은 것은 없다. 기도로 하루하루를 열었다면 오늘 아무리 큰 일이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나는 어제 같은 오늘을 살 것이다.

어느 날 간절히 바라던 일 앞에서, 또는 뜻하지 않은 위급한 상황 앞에서 우리는 기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나도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중대 결정을 앞두고 좌불안석의 나날을 보낸 적이 있다. 용하다는 점집 이야기를 귀 너머로는 많이 들었지만 막상 내 발로 찾아 나설 수는 없었다.

맞아, 갓바위 부처님!

갓바위 부처님은 간절히 기도하는 이에게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 그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때론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다. 소망하는 바는 많은데 왜 부처님은 하나의 기도에만 응답을 하실까?

새벽안개 헤치며, 산길을 오른다. 졸고 있던 가로등이 인기척에 흠칫 놀라더니 반가운 기색을 한다. 이따금 찬바람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옷깃을 여미게 한다. 쉬엄쉬엄 앞사람의 뒤를 보며 올라왔건만 어느새 땀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점점 시야가 넓어진다 하였더니, 저 멀리 희붐하게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점점의 불빛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도시가 홰를 치듯 어둠을 몰아내고 있다. 드디어 정상, 우선 부처님께 삼배.

“어, 귀하가 웬일이신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신다.

“일천 명이 넘는 단체의 무보수 봉사직 회장으로 입후보하려 합니다.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습니다. 낙선이라도 하면 사서 불명예를 감당해야 합니다. 제가 출마한다면 당선할 수 있을까요? 아예 단념을 할까요?”

“이 사람아, 점치러 왔는가, 기도하러 왔는가?”

“기도드리면 제 소원을 들어주실 건가요?”

“기도는 해 본 적이 있고?”

“물론 해 보았지요. 하지만 응답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허허, 기도에 응답이 없었다. 간절하지 않았으니, 맨입에 했겠지!”

“와, 족집게이시네요. 과연 부처님이십니다.”

“어느 해 초파일, 법당 문간에 기대어 나와 잠시 눈맞춤하던 그대 기억하네.‘

“…….”

“잠시 후면 이곳은 사람들로 꽉 찰 거야. 소원을 빌러 오는 그 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소원의 종류는 열 손가락을 다 꼽을 필요도 없어.”

“지금은 모두 좋은 대학에 입학이나 시켜 달라 하겠지요.”

“무턱대고 달라고만 하니 딱한 중생들이지. 자신이 한 일을 돌이켜보면 알 텐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 내놓을 것도 있어야지. 까짓 회장은 해서 무엇 하게? 그리고 회장을 한다면 그대는 무엇을 내놓겠나?”

“…….”

“솔직히 말하지, 난 그대를 회장 시켜줄 힘이 없네. 그래,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는가?”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같은 사람과 30분 정도도 마주하기가 버겁습니다. 반복되는 대화, 사적인 대화, 알맹이 없는 대회에는 저도 모르게 몸이 뒤틀리거나 하품을 참아내야 합니다.”

“허허, 안 되겠네. 상대 진영 친구를 만나면 어쩌나?”

“어차피 내 표도 아닌 바에야, 아무래도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허, 안 되지, 안 돼!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란 말이 있지. 그대의 편이 아닐수록 더 다정하게, 손아귀에 더 많이 힘을 주어 악수하게나.”

“의외입니다.”

“한마디 더 함세. 맨입에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불전함에 돈을 많이 넣으란 의미는 아니데. 무턱대고 달라고만 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내놓을지를 결심해야 하네. 그리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확답을 받아야 하네.”

“…….”

“기도란 그대의 인생에게 길을 묻는 것,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나. 난 그대의 인생이 되어 답할 테니.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준 정성은 갸륵하네만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었네. 난 히크 에트 눙크hic et nunc : here and now! 그대들이 나를 부른다면 어디서나 언제나 응답하네.”

부처님이 가르쳐준 대로 나는 나의 인생에게 길을 물었고, 부처님은 그때마다 친절하게 응답해주셨다. 다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내가 무엇을 내놓을지는 아직 부처님께 답을 못하고 있다.

 

 

[인터뷰] 장호병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장르 정체성과 장르명 고심해야 할 시점"

[데일리한국 김철희 기자] 수필가로 구성된 최대 단체는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이다. 장호병 이사장은 지난 3년간 한국 수필문학의 위상 정립과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해온 인물로 평가받고

dail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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