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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엄마의 뒤안 / 이은서

부흐고비 2021. 5. 7. 16:17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늘 뭔가가, 어떤 것 하나가 부족해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매일 새벽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빗자루를 들고 갔던 뒤안이 그런 공간이었다. 엄마의 낡은 냄새가 나는 그곳.

눈만 뜨면 뒤안을 쓸어야 했다. 엄마는 잠이 덜 깬 우리에게 빗자루를 쥐어 주며 마당을 쓸라고 했다. 동생은 앞마당을, 나는 뒷마당을 쓸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앞마당만 쓸면 될텐데 굳이 뒤안을 왜 쓸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투덜대면서도 엄마의 말을 거역하지는 않았다.

뒤안은 대체로 깔끔했다. 내가 부지런히 쓸기도 했지만 서까래가 담장 바로 앞까지 이어져 지저분한 것들이 바람에 날아들지 못하도록 지어진 탓도 있었다. 흙담의 한가운데에는 나름대로 멋을 낸 마름모꼴의 구멍이 뚫려 있어서 밖의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자주 울었다. 엄마를 찾다가 뒤안에서 쪼그리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나는 엄마를 부르지도 못 하고 발소리를 죽여 뒤돌아서곤 했다. 어째서인지 밖으로만 도는 아버지와, 오랜 치매를 앓고 있었던 할아버지와, 아직 어린 우리 남매들을 감당하기엔 엄마가 너무 왜소했다. 그런 엄마가 어두운 밤에 뒤안 벽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등을 들썩이고 울고 있으면, 귀퉁이에 처박혀 있는 깨진 장독보다 더 캄캄하고 더 작고 더 슬퍼 보였다.

낮에도 간혹 엄마가 안 보이면 나는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뒤안을 기웃거렸다. 어떨 땐 엄마는 없고 엄마가 앉아 있던 낡은 나무 의자가 담장 밖으로 뚫려 있는 구멍을 향해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나도 엄마처럼 그 의자에 앉아 보았다. 내 눈높이보다는 구멍의 위치가 높아서 엉덩이를 약간 치켜들어야 그곳을 통해 밖이 보였다. 밖은 액자 속에 그려진 한 폭의 정물화처럼 저 멀리 높은 전봇대가 줄지어 서 있는 큰 길이 보이고, 그 뒤로 온갖 풍문이 떠도는 저수지도 보였다. 누가 뛰어내렸다더라. 누가 사라진 지 한 달 만에 떠올랐다더라, 엄마는 여기 앉아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어디론가 떠나는 신작로의 버스를 보고 있었을까. 어딘가에서 돌아올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저수지 주변을 서성거리는 어떤 이의 모습을 보고 있었을까.

엄마는 왜 매일 그 뒤안을 나보고 깨끗이 쓸라고 했을까. 겨우 우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혼자 몰래 가서 울 거면서 왜 그곳을 쓸고 또 쓸라고 했을까. 저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의자는 내게 그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내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즈음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을 고를 때 나는 이상하게도 뒤안을 먼저 돌아보았다. 이전 집주인이 뒤안을 어떻게 여겼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떤 뒤안은 그저 잡동사니를 쌓아둔 창고쯤으로 취급받고 있었고, 어떤 뒤안엔 밥상에 오를 소중한 야채가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내가 고른 집은 어쩌면 안주인만의 사색 공간으로 뒷마당이 존재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락하면서도 비밀스러운 공간. 그러나 외롭지도 차단되지도 않은 곳. 나즈막한 담장 안은 안온하면서도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뒤안에 나도 엄마처럼 의자를 하나 가져다 두었다. 어쩌면 어느 어미 새가 둥지를 틀기 위해 나뭇가지를 물고 가다 떨어뜨렸을 나뭇가지들과 새의 깃털이 몇 가닥 뒹굴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특별히 가꾸지도 외면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 번씩 집안 식구들이나 세상 사람들과 숨바꼭질 같은 것이라도 하고 싶을 때 그곳에 가서 조용히 의자에 앉는다.

어쩌면 엄마는 밖을 향해 뚫린 담을 통해 어디론가 훌훌 떠나가는 자신을 보았을지도 모르며, 저수지를 향해 자박자박 걸어가고 싶은 마음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 거기 앉아 울고 나면 다시 배고픈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며느리도 몰라보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이 안타까워졌을 것이다.

엄마에게도 아무도 모르는 공간이 필요했다는 생각을, 나는 어쩌면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조금은 알고 있었을까. 내가 빗자루를 들고 더 깨끗이 쓸어야 엄마의 뭉친 가슴 속도 뒤안처럼 말끔히 씻겨나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래야만 뒤안을 돌아서 나올 때 엄마는 담장의 능소화처럼 환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볼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하품을 해대면서도 새벽마다 요령을 피우지 않고 뒤안을 쓸어야 했다.

나는 얼마나 오래 의자에 앉아 있었는지 노을이 내 뺨을 빨갛게 물들이는 것도 잊은 채, 저릿한 다리를 일으켜 뒤안을 쓸기 시작했다. 내가 눈물을 흘린 것도 아닌데 무심코 지나가던 노을이 내 뺨의 물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엄마의 뒤안에 내가 있다고 해서 엄마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던 것처럼 나 역시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엄마가 그 옛날 그곳에서 엄마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다면, 나 또한 나를 씻어내는 나만의 은밀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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