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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대못 / 김명란

부흐고비 2021. 5. 18. 09:12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동상

뇌가 찡 울린다. 정신이 혼미 할 정도로 아픔이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다. 베란다 벽면에 짤막한 못 하나를 박다가 그만 서툰 망치질에 못 머리를 친다는 것이 못을 잡은 내 왼손을 후리치고 말았다. 시퍼런 피멍과 통증이 단번에 엄습한다. 손가락을 움켜쥐고 푹 주저앉아 통증이 머져지기를 기다렸다. 너무 아픈 나머지 죄 없는 입술마저 깨물어 이중으로 신체 일부에 치명타를 날린 것이다.

문득, 수십 년 전 아픈 기억이 떠올라 가슴속이 불거진다. 삶의 무늬에는 기쁨과 슬픔으로 나누어진다. 엄마 가슴에는 진한 슬픔의 무늬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단단한 대못으로 박혀 돌덩이 같은 피멍은 가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넉넉한 집의 딸에서 또 그만한 집안의 며느리로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어느 날, 그 일로 인해 급격하게 달려오는 회오리 태풍을 맞고 만 것이다. 갑자기 몰아닥친 파랑주의보에 대처 할 틈도 없이 우박처럼 내리 꽃이는 파편이 망치질되어 엄마 가슴속에 꽃이고 말았다. 그날부터 세상은 온통 궂은 빛으로 흐려 평온한 마음은 무너지고 아픔이 몸을 허무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분기탱천한 벌에게 쏘인 것처럼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른다. 움직임마저 부자연스러워 깁스한 느낌이다. 망치질은 딱히 기술 없이도 목표물을 향해 아래로 힘주어 내리치면 되는 줄 알았다. 망치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한지 아픈 손가락을 통해 전해온다. 서투른 망치질에 피멍든 손가락도 이렇게 아픈데 그때 엄마의 아픔은 오죽 했을까.

초등시절,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언니는 윤기 나는 단말머리에 까만 실삔을 꽂은 모습이 어엿뻣다. 동네 어른들은 한입같이 영민하고 재주가 많다고 늘 칭찬이 자자했다. 왈가닥인 나하고는 비교 대상이 안 된 언니였다. 어쩌면 천방지축인 나로 인해 언니의 위대함은 더 빛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런 언니가 고등 입학 3일 만에 예기치 못한 사고사로 운명을 달리 했다. 그때 어린 나이였던 나는 생의 마지막은 대단한 슬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별의 포옹도 없이 언니의 마지막은 그렇게 순식간에 내 옆에 다가 와 앉았다. 단발머리 소녀였던 모습이 마지막 모습으로 각인되어 내 가슴속 아픔의 상련으로 남겨 졌다. 흐르는 시간에 밀려 아픔은 점점 흐려졌지만 언제나 드리우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사람이 태어 날 때는 큰 축복과 기쁨을 날라다 주고, 명을 다하는 날은 큰 슬픔을 동반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는 것은 잴 수 없는 대못 질과 같다. 이렇게 엄마의 가슴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참척의 고통이 박혀 그 아픔이 누적되어 깊이 뿌리를 내려 온 몸으로 퍼져 버린 지도 모른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우리 삼남매를 불러 앉혀놓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희 엄마 가슴에 박힌 대못을 뺄 수 있는 사람은 너희들뿐이란다. 야무지게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흙탕물은 가라앉는데 시간이 필요하니······.”

가슴속에 쌓인 아픔을 세상 밖으로 밀어 낼 수 있도록 너희들 도움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거였다. 그 말씀에 오빠는 퍼뜩 알아 차렸다. 어린동생과 나는 한참 후에야 깊은 뜻을 이해 할 수가 있었다. 오빠는 엄마의 얼굴에 웃음꽃을 만개하려고 장남답게 묵묵히 노력을 해왔다. 우등상장과 모범 표창장을 받아오기도 했고, 나는 운동회 날이면 손등에 1등이란 숫자를 그득 찍어와 엄마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도 맘만 먹으면 엄마를 위해선 칭찬 받을 일은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엄마의 얼굴은 우리들 앞에선 활짝 웃으셨지만 이내 슬픈 표식으로 돌아가곤 했다.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속내는 금시뿐이란 것을 느꼈다.

된서리가 하얗게 내린 아침, 햇볕이 뜨면 눈 깜짝 할 사이 서리가 사라지듯, 새까맣게 탄 속내를 자식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이내 밝은 모습을 펼쳐 보이시며 무던히도 애쓰며 인내심으로 버티어 온 엄마다. 고추보다 매운바람이 검은 가슴을 마구 할퀴었지만, 꿋꿋이 버티며 알뿌리가 모진 겨울을 지나 꽃을 피우듯이 자식들이 험난한 풍파에 잘 견뎌 잘 자랄 수 있도록 온 몸으로 바람막이가 되었으리라.

망치에 맞은 손가락은 시간이 갈수록 부은 부기가 빠지고 있다. 검푸른 피멍도 서서히 잠복기간을 단축하여 옅은 색깔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세월의 물살에 떠밀려 엄마의 슬픔도 서서히 옅어 가는 것 이였다. 부은 손가락에 부기가 서서히 빠지는 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옆에서 본 나와 당사자의 마음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그 연유는 어린 손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모습과 자식 삼남매가 탈 없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엄마를 치유한 약이 되었을까. 예전 할머니가 하신 말씀처럼. 장마 비로 인해 황토색 강물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맑은 물이 되듯이 삶도 세월의 속도에 따라 무늬가 달라지는 나무와 같다고 하지 않던가.

엄마의 얼굴에 그늘막이 서서히 걷히면서 얼굴에 평정이 다시금 찾아 온 것이다. 이것은 오직 나만의 추측이지만. 어둡고 차가운 긴 터널 속에서 음울하게 허덕이는 고통을 얼마나 감내 해 내기 힘들었을까. 자식을 낳아 길러보니 엄마의 아픔을 천 번 이라도 이해할 수 가 있었다.

손가락 통증도 부기도 말끔히 사라지고 움직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장구의 세월이 흘러가도 엄마의 상처가 부은 손가락처럼 말끔히 없어지기야 하겠냐마는 남은여생 편안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에 인생을 고운 빛깔로 수놓으며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하는 딸의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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