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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두무진 / 함용정

부흐고비 2021. 5. 19. 06:40

오래전 꼭 가보고 싶은 섬이 하나 있었다. 지리적 거리도 멀지만 심리적으로는 좀 더 멀게 느껴지는 섬. 쉽게 가볼 수 없는 섬이기에 그 땅을 밟아보는 것도 남다른 감회에 젖을 수 있다. 험한 뱃길에 뱃삯이 비행기 저가항공 요금보다도 비싸다. 육지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백령도는 오로지 바닷길만을 이용한다. 일정 기간 예약하고 섬에 들어가지만, 기상이변이 심하여 제때 나올 수가 없어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시간적 여유와 여행 경비 문제가 해결되어야 맘 놓고 다녀 올 수 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마음은 있어도 쉽게 가지 못하는 섬으로 남아 있었다.

서해안 최북단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백령도. 옛날에는 인천 부두에서 190km 떨어진 거리를 12시간 정도 배를 타고서 섬에 가야 했다. 지금은 고속 선박의 등장으로 4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다니 과히 획기적일 수밖에 없다. 바로 눈앞에서 배로 30분 정도면 북한 땅에 닿을 수 있는 최전방 섬이다. 주민들에 의하면 60년대 초 안개가 짙게 끼는 날이면 여객선과 어선들이 바닷길을 잃고 헤매다가 북으로 향하는 것을 알게 되고는 기겁하고 돌아온 일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최근 십여 년 전 봄에는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뜨거운 이슈로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백령도는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이다.

섬의 이름은 곡도였으나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백령도라 한다. 그 밖에 여러 전설이 재미있게 전해져 온다. 섬에 사는 사람들의 고충은 비싼 여객선 운임에 있다. 하지만 인천시의 재정적 지원으로 인천시민은 운임의 80% 할인을 받고 있어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있다. 따라서 관광객이 늘어나면 섬의 경제는 살아난다. 농업과 관광업을 주로 하고 있지만, 어업의 경우는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으로 어족자원의 고갈 등 문제점을 갖고 있다. 쌀농사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곡창지로서 알려져 있다. 지리적으로 보면 큰 문제점을 안고 있을 수 있는데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던가.

섬 구석구석을 돌아보면 천연적인 관광지가 눈에 띈다. 먼저 여행지로 사곶해변이 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릴 정도로 모래가 단단하다. 어릴 적 초등학교 전 학년이 체육대회를 할 수 있을 만큼 널따란 운동장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청팀 백팀 나누어 응원전을 펼친다면 그 우렁찬 함성이 파도를 타고 십 리는 갈 것 같다. 또한 이탈리아 나폴리 해변과 더불어 세계에서 단 두 곳밖에 없는 천연 비행장으로 불리고 있어 한국전쟁 당시 비행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금포 남쪽 1km 정도 달하는 콩돌해안(천연기념물 제392호)에는 갈색, 회색, 백색, 적갈색 등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 콩만 한 돌들이 있다. 형형색색의 자갈돌들은 파도가 밀려올 때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낸다. 잠시 나는 콩돌에 엎드려 귀를 대어본다. 오랜 세월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본다. 분명 어디선가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려졌다. 한쪽에서는 도토리 알만한 크기의 콩돌을 주어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 부딪치는 소리가 맑아 경쾌한 느낌을 주기에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을 한다. 예전에는 콩돌이 인근 마을까지 퍼져 있었는데 이 돌을 외부로 대량 판매하면서 현재는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지금은 원천적으로 돌을 수집해 육지로 나갈 수 없다. 좀 더 일찍 자연 관리에 힘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의 백미는 두무진 관광이다.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한다. 다행히 바람은 있지만 날씨가 좋아 큰 행운을 얻은 듯 가슴이 설렌다. 가이드의 해설도 명쾌하고 시원하다. 백령도 북서쪽 긴 해안선을 따라, 오랜 세월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천연으로 만들어졌다. 사람들도 사는 동안 세월과 시간 속에 깎여 성질을 죽이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도록 다듬어 주는 이치와 같다. 높이 50여 미터 내외의 규암 절벽이 병풍처럼 둘려 요새를 이루고 있다. 두무진 뜻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김새가 머리털같이 생겼다’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불리다가 후에 ‘장군 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며 두무진(頭武鎭)이라 부른다. 특히, 이 지역은 북서 계절풍의 영향을 직접 받은 곳이어서 해식작용이 심하게 일어난다. 선대암 남쪽 약 80m 지점에 있는 만입부의 파식대에는 밀물 때 바닷물 거품이 작은 만입부에서 불어 오르는 돌개바람에 의해 하늘 높이 솟아올라 함박눈처럼 내리는 현상이 있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모습을 보면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두무진하면 물범 바위와 형제 바위, 장군 바위, 사자 바위를 생각할 수 있는데 어쩌다 백령도 관련 TV 뉴스가 나오면 물범이 자주 등장해 지상의 낙원임을 알려준다.

백령도를 꿈에도 그리워하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섬. 그래서 태초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백령도는 흙 속의 진주와 같은 섬이다. 쉽게 일반인에게 보여 주지 않으려고 멀리 떨어져 있다. 흙 속의 진주 같은 사람이 각 분야에 활동하여 사회는 건강하고 국민은 살기 좋은 행복한 나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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