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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꿈을 꾼다 / 유양업

부흐고비 2021. 5. 27. 21:49

80에 가까운 이 나이에 꿈을 꾼다는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꿈을 꾼다는 것은 유소년시절은 유소년시절 대로 청년시절은 청년시절 대로 장년시절은 장년시절 대로 노년시절은 노년시절 대로 나름대로 꿈을 꾸는 삶이 있을 것이다. 꿈이라면 건강에 대한 꿈이 있을 것이고, 대학을 선택하는 꿈, 직장에서는 승진의 꿈, 사업에서는 돈 버는 꿈,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꿈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달란트를 잘 발휘해 보고자 하는 꿈, 성경 말씀 따라 살아보겠다는 꿈, 이상적인 남편을 만났으면 하는 꿈, 자녀들을 낳아 그들이 교회와 사회에 공헌하는 인물들이 되었으면 하는 꿈이었다. 내가 알고 만났던 전혜성 박사(남편 고인 고광림 박사)는 4남 2녀를 두어 그 자녀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아 미국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어 국가에 크게 봉사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컨대 미국 사회에서 예일대 법대 학장 및 국무성 차관보 고홍주 박사 (클린턴 정부) 혹은 다른 아들이 하버드 대학교 학장 및 보건성 차관보 (클린턴 정부) 한 딸은 예일대 법대 교수로 봉직한다. 전혜성 박사의 자녀 손들이 취득한 박사 학위가 11개라고 한다. 과연 미국 사회에서도 우러러볼 만한 가정이다. 그런데 전혜성 박사님이 자녀 손들에게 강조한 교육은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하는 것이었단다. 국내외에서 사회 및 국가에 대하여 출중하게 일하고 있는 가정들이 많이 있다. 자는 필자의 삶과 자녀들의 삶을 놀랍게 인도해 주신 주님의 은총에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린다.

나는 주님의 일을 하려고 신학 공부도 했고, 전남 연합회 순회총무로 일할 때 남편 문 목사를 만나 결혼을 했다. 남편 문전섭 박사는 내가 바라던 남편으로 이상적이었다. 남편은 첫 목회지 순창제일교회 시무, 광주 무돌교회 개척, 현 광주 남문교회 개척, 순천 중앙교회시무, 이렇게 목회를 할 때는 나도 함께 도왔고, 대전신학교 학장, 총회 교육부 총무로 시무 할 때는 나는 자녀들을 돌보며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그 후 자녀들이 성장하여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다닐 때 였다. 신학교 책임자로 경험이 많았던 남편에게 러시아에 신학교를 설립하여 현지인 학생들에게 신학교육을 시키고 나에게는 음악을 가르치라는 제의가 있었다.

막내가 고2학년 중요한 시기에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자녀들을 돌보아야 하나, 선교지로 떠나야 하나,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이 많이 되었다. 그때 자녀들이 말했다.

“우리는 다 컸으니 가셔서 선교사역 해야지요. 우리는 다 자랐으니 염려마세요.”

오히려 자녀들은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지만 내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마음은 몹시 아팠다. 총회파송으로 러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선교사역을했다. 러시아에서는 장로회 신학교를 설립하고 우리 내외가 가르쳤으며 샤스찌에(행복)교회도 설립하여 섬기며 봉사하는 삶에 전념했다. 싱가포르에서는 남편 문선교사가 한인교회 협동목사로 일하면서 인도네시아 바탐 신학교 교수로 가르치며 섬겼다. 나는 일대일 성경공부를 성도들에게 가르쳤을 때 성령의 역사가 놀랍게 나타남도 체험했다.

선교사역 15년을 한 후 정년이 되어 은퇴했다. 선교사 사역 은퇴 후에는 딸의 권유로 재단법인 자살방지 한국협회에서 공부하고 시험을 보았다. 상담사, 교육 강사, 설립 자격증을 취득하여 <풍성한 생명 상담> 이란 간판을 걸고 봉사하며, 원하는 자들에게 성악 레슨도 봉사하고 있다.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내가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들을 개발해 오고 있는 중 다수의 문학상, 한국화상, 서예상도 받았다.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호남지회장으로 활동하며, 국내외 교회에서와 그 외 다른 곳에서 독창자로 꿈을 이루어 오고 있다.

우리 가정에 2남 2녀의 자녀들을 허락해 주셨다. 국내외에서 두 사위를 포함하여 모두 목사가 되어 사역하고 활동하는 것을 볼 때 무한 감사하다. 유학을 갔던 두 아들(문은배 D Min:목회학 박사, 문학배 콜럼비아 신학교 재학)이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는데, 요즘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들이 인도하는 예배 실황을 이곳 한국 집에서 온라인으로 보고 듣고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그들의 각 가정에 두 명씩의 자녀들이 있는데 손주들이 성장해 가고 있는 모습들을 영상으로나마 보면, 참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워 많은 위로가 된다.

아들들이 교회의 담임 목사로서 교인들을 보살피며, 예배를 인도하며, 설교를 통해서 교인들에게 영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것을 볼 때에 흐뭇한 마음이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신학의 길로 인도했을 때 그대로 순종했으며, 부모 된 우리가 선교지에 있는 동안 네 자녀 모두가 교역자가 된 것을 우리 내외는 늘 보람되게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음을 감사한다.

한국에는 두 딸 문은영 목사 문은진 목사 가정이 있다. 문은영은 사위 박형국 목사와 미국에 유학하여 에모리 대학교에서 각각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딸은 클레어먼트 신학교에서 사위는 드루 신학교에서 각각 PhD 학위를 받았다. 딸 은영은 장로회신학 대학교에서 기독교 교육 분야에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학술 논문들도 여기저기 기고하고 있다. 사위 박형국 목사는 한일장신대 교수로 조직신학 분야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프로젝트 등 학술 논문들을 생산하고 있다.

딸 은진 목사는 사위 이창렬 목사가 목회하고 있는 순천성북교회에서 교육부를 돕고 있으며, 시市 지원으로 예능분야를 맡아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딸들 두 가정에 4명의 손주들이 잘 성장하여 두 외손자들은 대학 재학 중 군대에 복무하고 있음도 국가에 대한 의무를 하고 있어 든든한 마음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 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잠언의 이 구절이 다가와 나의 꿈과 일치함을 주는 느낌이다. 과연 주님은 우리의 계획이상으로 우리의 꿈과 삶을 은혜로 인도해 주셨다.

최근에 나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저서 <꿈을 꿉시다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접하게 되었다. 교황의 꿈은 우리의 꿈과는 달랐다. 교황은 본인의 관심을 이렇게 열거했다.

“첫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거북하더라도, 사회의 주변부가 고통 받고 있다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것이다.

둘째, 사회에 작용하는 다양한 힘을 식별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것과 파괴하는 것,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속한 것을 선택하고 반대의 것을 거부한 것이다.

셋째,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진단하고, 우리가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가를 처방하는 참신한 생각과 구체적인 단계를 제안하는 것이다.”(317쪽)

이 세 단계가 그의 책 <꿈을 꿉시다>의 기본 골격이다. 이 책 내용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직시할 시간, 선택할 시간, 행동할 시간’으로 되어있다.

교황의 책을 읽어가면서 내게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이같이 회고했다.

“첫째는 나에게 주어진 기도 능력이고, 둘째는 내가 경험한 유혹들이며, 마지막 세 번째가 가장 기묘한 것으로, 무려 37권이나 되는 루트비히 파스토어의 <교황의 역사>를 읽게 된 이유입니다. 소설이나 더 재밌는 책을 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역사책을 읽도록 자극했던 이유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일종의 백신을 접종하신 것 같았습니다. 나에게는 무척 유익한 책이었습니다.”(112쪽)

아마도 교황 프란치스코는 37권이나 되는 <교황의 역사>책을 읽으므로 해서 각 교황의 공과를 알게 되어 현재의 교황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으리라. 교황 프란치스코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었다.

“나는 카르토네로(종이상자를 비롯해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을 찾아 밤마다 길거리를 샅샅이 뒤지며 살아가는 사람들 282쪽 넝마주이–필자 주)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어느 밤 그들과 함께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들을 수거했습니다. 그들처럼 옷을 입었고, 주교를 상징하는 패용 십자가도 벗었습니다. 몇몇 지도자만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도시의 쓰레기에 의존해서 살아가며, 사회가 버린 것들을 어떻게 재활용하는 지를 보았습니다. 또 적잖은 엘리트가 그들을 잉여인간처럼 취급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한밤중에 그들과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돌아다니며, 나는 그들의 눈으로 그 도시를 보았고, 그들이 겪는 무관심도 경험했습니다. 점잖고 조용한 폭력으로 변하기에 충분한 무관심이었습니다.”(283~284쪽)

나는 교황의 이런 글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남편이 출간했던 <철저히 변두리로 가신 예수 그리스도>란 책의 제목이 생각났다. 교황의 주변부에 대한 지극한 관심은 남편의 책 제목과도 같았다. 교황의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었는데, 이처럼 나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 오직 예수님을 철저히 따르는 삶을 계속 이어질 나의 꿈으로 삼고 나아가리라.


▲ 유양업 수필가
‧ 저서 : 수필집 행복한 여정,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별빛 따라 외
‧ 수상 : 문학 세계 문학상 수필 대상, 시와 창작 수필 대상 외
‧ 한국 문학을 빛낸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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