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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에도 오지가 있다. 한반도의 남쪽 울진에는 물길 오지라 불리는 왕피천이 흐른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울진군 온정면에 걸쳐진 금장산 골짜기와 만나, 이산 저산 이 골짝 저 골짝으로 숨어들어 몸을 불리며 왕피천이 된다. 세차게 흐르는 여울 아래 소용돌이치는 소沼가 여럿 있고, 소를 지난 물은 더 굳세게 아래로 휘몰아친다. 수달, 까막딱다구리, 딱새, 황어, 은어 등 이름마저도 맑고 깨끗한 생명이 목숨 붙이고 살아간다. 왕피천엔 어떠한 세상 소리도 없는, 오직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만 들린다. 사람 발자국 소리는 민망하기까지 하다. 낙동정맥 굽이굽이 돌고 돌아, 한껏 몸집이 커진 왕피천은 적막강산 고독과 사색을 품고 동해로 흘러간다.

늦가을이면 왕피천엔 연어가 돌아온다. 모천회귀 본능이 있는 연어는, 대해를 떠돌다 수만 리 고향을 찾아 물길을 거스른다. 회귀의 여정은 고단하고 험하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고향의 맑고 깨끗한 물맛을 잊지 못함이다. 좋은 곳에 자손을 번성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종種이든 본능으로 작용한다.

은빛 비늘은 깨지고 빠져 성한 데가 없고, 주둥이는 찍히고 터질 때까지 연어들의 회귀는 멈추지 않는다. 힘차게 물살을 거스르던 지느러미는 갈래갈래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져서야 고향에 당도한다. 연어는 그렇게 온몸으로 돌아온다. 본능을 좇아 고향에 다다르면 맑은 몸에 짖긴 몸을 씻고, 왕피천 그 어디 즈음에 산란을 한다. 그리고 그 맑은 물에서 제 신음소리 다독여 생을 마감한다. 바다를 누비던 단단한 육신은 비로소 왕피천 맑은 물에 훌훌 풀어진다. 연어는 그렇게 영원한 왕피천이 된다. 생生과 사死,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왕피천은 희로애락이 함께 자라고 함께 저무는 본능이 흐르는 곳이다.

왕피천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깊은 협곡과 유려한 경관을 보인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펄떡대는 원시의 날것 그대로를 간직한 곳이다. 숨어들기 좋았을 곳이고, 은둔하기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국난을 피해 왕이 피신했다는 이야기는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왕피천王避川’, 글자 그대로 왕이 피신했던 곳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태곳적 신비와 고요에 잠겨 ‘아름다워라, 놀라워라’ 그저 넋 놓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그들의 비운이 전해지는 듯도 하다.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이 은신했다는 이야기도 있도, 『삼척군지』와 『울진군지』엔 삼한시대 실직국의 왕이 몸을 피했다고도 한다. 그만큼 왕피천은 지세가 깊어 은신하기에 아주 유리한 요새였다.

삼한시대 삼척과 울진지역을 지배했던 작은 나라 실직국이 있었다. 실직국의 안일왕은 몇 안 되는 신하와 호위병을 이끌고 사로국(신라의 전신)의 군대를 피해 급히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사로국 군대의 추격을 따돌린 안일왕 일행은, 수십 결 굽이치는 깊은 골짜기에 몸을 숨긴 뒤 나라를 되찾게싸는 각오로 산성을 쌓았다. 그러나 희망도 잠시 산성이 함락되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왕은 신하와 왕을 바꿔 입고 도망가다가 어느 골짜기에서 최후를 맞았다.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23년(102년) 10월, 실직국은 역사의 기록에서 그렇게 완전히 사라졌다.

왕이 산을 넘으며 통곡했다는 ‘통고산’, 성을 쌓고 항전한 ‘안일왕 산성’, 모자를 벗어놓고 샘물을 마셨다는 ‘복두괘현(삿갓봉골 또는 박달재)’, 왕이 피난해 숨어 살았다는 ‘왕피리’, 군사가 머물렀던 ‘병위동’, 군사들이 밥을 해 먹었다는 ‘포전’, 왕이 앉아 쉬었다는 ‘임광터’, 군량미를 저장했다는 ‘거리곡’, 왕이 최후를 맞았다는 ‘핏골’까지 왕피천 일대엔 실직국의 최후를 간직한 지명이 남아 그때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런 역사적 슬픔을 알고 왕피천을 따라 가노라면 흐르는 물도, 우짖는 새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도 모두 슬픔에 찬 듯 쓸쓸하기만 하다.

구산리로 가는 길은 험하기 짝이 없다. 왕피천 하류에서 내륙으로 아홉 고개를 넘어 마을이 있다 하여, ‘구고동’ 또는 ‘굴구지’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구산2리에서 구산3리로 가는 길은 이름만큼 험하여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산기슭에 겨우 난 길은, 금강송 깊은 그늘에 싸여 한낮에도 어둡고, 굽이굽이 에둘러 이어지며 한 치 가늠하기도 어렵다.

까마득히 아래서 흐르는 왕피천 물은 사람의 손길이 멀어 더욱 은밀하다. 오지의 골자기로 향하는 길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길이 맞나 싶다가도 ‘구산리 삼층석탑’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고야 안심이 된다. 자연 지형 그대로 난 길은 차 한 대 겨우 지날 만큼 비좁고, 울퉁불퉁 비포장으로 이어져 여간 고된 여정이 아니다. 그간 오지란 오지는 다녀볼 만큼 다녀봤다고 자부하지만, 왕피천 길은 또 다른 낯섦이고 또 다른 긴장이다.

드문드문 집들이 나타난다. 바람 불면 흩어질까, 비 오면 무너질까, 위태롭기 그지없는 집이다. 태고의 신비란 이런 것일까. 오래된, 변하지 않은, 낡은, 초라한, 원시적인…. 태고의 신비에 젖어 있을 무렵, 굽어 도는 길 귀퉁이 뾰쪽한 탑 머릿돌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집 삽짝에 차를 세우니 마음은 벌써 저만치 앞이다. 탑은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 있다. 아니 오래된 감나무 하나 벗하였다. 나무도 탑도 꽁꽁 얼었다. 회색빛 바위, 헐벗은 나무, 황량한 주변이 동공까지 얼어붙게 했다.

3층으로 올린 탑은 머릿돌이 사라지고 노반만 남았다. 3단의 지붕돌 모서리는 대부분 깨졌으나, 2층 한쪽 모서리가 성하게 남아 하늘을 향해 들려 있다. 탑 전체가 고르지 못하고 거친 편이지만, 무너지고 흩어진 것을 1968년에 복원한 후, 그해에 보물로 지정될 만큼 신라 탑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청암사 터靑岩寺址’라는 것이 지역민의 구전으로 내려오지만, 어디에도 기록으로 남은 것이 없어 정확한 이름을 얻지 못하고 ‘구산리 절터’로만 불리게 되었다. 금동불상, 송나라 동전, 기와, 토기, 연화문 수막새, 청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물이 나왔지만, 탑을 세우고 법등을 밝혔던 절의 역사는 아직도 미궁이다. 이런 이유로 탑의 이름도 ‘청암사지 삼층석탑’이 아닌 ‘울진 구산리 삼층석탑’이다.

탑에는 그 흔한 조각 하나 새기지 않았다. 어쩜 이리도 무심했을까 싶다가도, 어쩌면 단조롭고 밋밋해서 더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 싶다. 자연과 맞닿은 듯 탑은 무심하게 서 있다. 이 오지마을에 조각이 세밀하고, 구성이 화려한 탑이 있다면 어울렸을까.

탑 앞에 석등 대좌 2기가 놓였다. 크게 새겨 놓은 연꽃 무늬가 매우 단조롭지만, 곡선의 굴곡이 곱다. 간주석은 부러졌고, 등촉을 밝히던 화사석은 없다. 대체적으로 초라하다. 꽤 너른 터에 흔적이라곤 곳곳에 박힌 초석과 상처 많은 탑과 석축과 석등대좌, 기와 조각, 주춧돌 몇 개 뿐이다. 폐사된 절의 쓸쓸함이 이곳만 할까 싶다.

탑 주변엔 오래된 집 한 채가 요사채처럼 놓였다. 빈집인가 싶다가도 인기척이 따뜻하게 번진다. 오다가다 탑과 벗하며 풍경이 되는 할머니는 낯선 사람도 반갑게 반긴다. 주변이 울울창창하여 바람의 들고남이 요란하지는 않겠다.

빛이 든다. 탑이 하얗게 빛난다. 왕피천과 커다란 바위는 온통 분부신 장관을 이룬다.

왕피천 굽어 도는 그 얻 즈음에 아주 은밀하게 숨어 은둔 중인 절터는,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았다. 왕피천이 절을 끌어안았는지, 절이 왕피천을 끌어안았는지는 모르나, 아름다운 풍경 속 아름다운 절이었을 것이다. 왕피천 곳곳에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산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적당한 긴장과 설렘을 안고 도착한 오지에서 탑 한 기를 만나 말없는 벗이 된다. 탑은 어느 왕의 슬픈 탄식과 통곡과 피눈물 섞인 왕피천을 달래며, 아무도 찾지 않을 곳에서 홀로 소리 없는 독경을 왼다.

청암사는 어디로 갔을까. 홀로 감내한 세월은 주저리주저리 석태가 되었고, 허허로운 풍광 속 상처 많은 석탑도 세월을 먹었는지 노승처럼 섰다. 불영사나 유금사 마당에 당당하게 서 있는 탑과도 많이 닮은 듯하지만, 탑이란 게 어디 탑만 놓고 분위기를 말할 수 있을까. 험한 길 굽이쳐오며 느낀 복잡한 심정과, 쓸쓸한 풍광과, 어느 왕의 비통한 심정이 자아내는 느낌은 어떤 언어로도, 어떤 사진으로도 남길 수 없다.

햇살에 골짜기가 녹고 있다. 탑 주변 바닥이 온통 질척인다. 벌써 봄인가 보다. 물 고인 논엔 경칩이 보름이나 남았음에도 개구리가 알을 낳았다. 생生과 사死,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왕피천엔 사라진 절도 시간을 회귀해 다시 설 수 있을까. 어느 날 문득, 이 너른 터에 청암사 이야기를 담은 거룩한 무엇인가가 회귀해 주길 소원한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잡풀 어지러이 뒤엉켜 이 흔적마저도 완벽한 은둔을 누리겠다.

글,사진 박시윤 지음, 디앤씨북스 펴냄


⚫경주 감은사 터 –바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 박시윤
⚫속초 향성사 터 – 그리하여, 오래오래 눈이 내렸다 / 박시윤
⚫고성 탑동리 절터 –볼 것 하나 없으면 어떠리 / 박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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