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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모란이 만개하던 날 / 곽진순

부흐고비 2021. 6. 11. 12:57

해마다 고향집 화단에는 갖가지 꽃이 피고 졌다. 수국, 연산홍, 쩔쭉, 상사화, 노란나리, 원추리, 사루비아. 고향집에 갈 때마다 그것들을 그윽이 바라보았다. 어찌 그리 곱더냐. 꽃이라서 예쁘더냐. 조물주한테 나에게 올 사랑과 관심까지 독차지하였더냐? 나는 꽃들을 보며 그렇게 속삭이곤 했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그 생명력이 너무 짧아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덧없음과 유한성을 자각하도록 하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각각의 꽃은 특유의 매력이 있으되, 특별한 사연과 인연으로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수수밭에서 자라는 수수들처럼 '꽃'이라는 하나의 개념 아래 몰개성의 개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4월이었다. 고향집을 방문 했을 때 영산홍과 모란이 만개해 있었다. 나는 사열이라도 하듯 화단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꽃송이마다 눈을 맞추었다. 엄지같은 싹을 틔우고 있는 노란나리, 이파리 무성한 수국, 연부농 연주황의 연산홍을 지나 모란 앞에 멈춰섰다.

이상하게도 모란 옆에서 붙박인 듯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이 꽃이 이토록 우아하고 아름다웠던가. 숨이 멎을만큼 고운 빛깔이었던가? 이 향기는? 작년에도 이 향기에 어찔했던가? 모란에는 향기가 없다는 말도 있으나 나는 확실히 달콤하고 진한 향기를 맡았다. 맡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평상시 무심히 보아오던 사람의 진면목을 불현듯 발견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모란에 매료되어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러자 크고 탐스러운 꽃송이들이 내 몸을 감싸고 향기를 내뿜는 착각에 빠졌다. 머리에도, 어깨에도, 가슴에도, 배에도, 허벅지에도, 발가락에도 모란이 출렁거리듯 피어 있었다. 향기를 맡은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와 꽃들 위에 앉아 꿀을 빨았다. 나는 비로드 같은 꽃잎의 감촉과 향기에 취해 나른하고 몽롱한 기분이었다.

잠시 후, 눈을 떴고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건 너무 야릇하고 에로틱한 환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꽃을 두고 이토록 이상한 공상에 사로잡힌 것도 처음이다. 프로이트가 살아있다면 '리비도의 발현'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리비도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석연치 않았다. 나 자신을 분석했다.

내 나이 오십줄에 접어들었다. 농부가 가을에 농작물을 수확하듯 인생에서 뭐가를 거두어들일 때가 된 것이다. 농부들은 곡식과 채소를 수확할 적에 나름대로 품평을 한다. 이 서리태는 잘고 비쩍 말라 장에 내다팔지는 못하겠고, 이 고구마는 굵직하기는 한데 굼벵이가 먹어 상품가치가 없고, 이 들깨는 알이 튼실해 기름을 짜면 사뭇 나오겠고....

농부들이 농작물을 평가하고 가치를 매기듯 나도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았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몇이나 두었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는가. 그 일로 충분한 수입창출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의 집은 우아하고 시적인가. 난 편협하고 까칠한 이기주의자일까. 관대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나이를 먹었을까. 나는 속물일까. 특별한 사람일까?

이 물음들에 대해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대답하기가 모호하거나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오십 평생을 돌아볼 때 내 인생은 평년작에도 못 미치는 흉작임이 분명했다.

내 또래들, 혹은 나보다 연배가 많은 분들은 두 명 이상이 모이면 인생의 '축적물'과 '결과물'을 이야기한다. 외국여행의 횟수에 대하여, 남편의 승진에 대하여, 사위나 며느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새로 이사한 아파트의 거실과 화장실 바닥의 재질에 대하여, 새로 장만한 밍크코트와 결혼기념일에 받은 보석에 대하여, 자동차의 기종에 대하여, 반려견의 품종과 가격에 대하여 다투듯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친구나 주변 사람들의 그것들에 대해서도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한다. 그건 인생의 황혼기에 자신의 수확물을 가치 평가하고, 더 나아가 타인의 그것과도 비교해보려는 심리가 아닐까? 더 근본적으로는 '부귀영화'에 대한 채워질 수 없는 갈망과 욕망이 끊임없이 인생의 '결과물'에 나열하도록 하는 게 아닐까?

'부귀영화'의 사전적 의미는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영광스럽고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인생의 초년이나 중년에는 그 시간과 경험의 짧음으로 아무래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순리대로라면 오십이 지난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하늘의 별을 따고 무지개를 붙잡은 이 얼마인가. 무언가를 잡기 위해 평생을 애면글면하다가 종당에는 그 꿈마저 포기한 채 지상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우리 중생의 운명이 아닐까.

나는 부귀영화라 표현할 수 있는 삶의 백분의 일에도 근접하지 못했다. 때가 때인지라 그런 삶을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동경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욕망이 너무 깊고 간절해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을 휘감고 나른한 쾌락에 빠지는 환상에 사로잡혔는지도. 참 자신이 너무 애처롭고 안됐다.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는 데는 실패했으나 한 가지는 자신 할 수 있다. 비로소 모란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이다. 영랑이 그토록 모란에 취하고 반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곽진순 수필가:

조선대학교 철학과 졸업. 2013년 <에세이문학>등단. 수필집: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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