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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왜 마시는가 / 곽진순

부흐고비 2021. 6. 11. 12:39

영화 <술고래>에서 주인공 미키 루크는 무시로 술을 마신다. 길거리에서, 공원 벤치에서, 침대 위에서 쉼 없이 병나발을 불어대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다.

그는 취해서 걸핏하면 사람들과 시비를 붙고 싸움질을 한다. 그는 별다른 직업도 없고 안락한 가정도 없다. 삼류 건달이 보낼 법한 일상을 날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술 마시는 것 못지않게 그가 즐겨하는 것이 하나 있다. 라디오를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일이다. 술과 음악,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지도 모른다. 옛날 희랍인들은 바커스 축제 때 왕창 술을 마시고 북장단에 맞추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엑스터시한 상태에서 신과 합일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술과 음악이란 접신하는 데 필요 불가결한 요소였다.

미키 루크에게 있어서 술이란, 특히 음악이란 어떤 역할을 할까. 술고래에다 건달 같은 그에게 음악이란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배합이다. 그가 음악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분신처럼 사랑한 데는 아주 '숭고한' 이유가 있다.

그는 술과 음악에 취한 가운데 가끔씩 종이 위에 도발적으로 뭔가를 끄적거린다. 그는 시인이었던 것이다. 창작에 필요한 영감과 상상력을 얻기 위해 술고래가 되어야 했으며, 불난 집에 석유를 끼얹는 격으로 그 위에 또 음악이라는 묘약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술로 도배되고 음악으로 장식된 시인의 머리는 기이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섬광처럼 번쩍이는 언어들을 토해내도록 했을 것이다. 미크 루크의 무질서하고 퇴폐적인 생활은 그가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용납이 된다.

나도 흉상을 조각하거나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고성방가를 하고 미친 사람처럼 춤도 출 건데, 하다못해 어느 회사의 과장쯤 된다 해도 과중한 업무에 따르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술을 퍼마실 텐데.

나는 별다른 재주를 갖지 못한 범속한 사람이기에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안 되냐,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곽진순 수필가:

조선대학교 철학과 졸업. 2013년 <에세이문학>등단. 수필집: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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