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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마 중사 / 김상영

부흐고비 2021. 6. 14. 14:11

‘마 순경’이 사라질 모양이다. 마 순경은 과속을 막으려 도로변에 설치한 가짜 경찰이다. 차가 내달릴만한 도로를 귀신같이 옮겨 다니며 근무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으로 서 있는 마 순경을 발견할 때면 머리끝이 쭈뼛 선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을 실감한다.

마 순경을 차고 때려 분풀이를 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이해가 간다. 가뜩이나 부대끼는 세상살이에 가짜에까지 골탕을 먹으니 오죽하랴. 경찰관서에서는 백성이 괴롭히고 관리마저 어려워 없애야겠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선글라스와 경광봉을 슬쩍해 가기도 한다니 심하긴 하다. 다시 착용시켜봤자 기어이 손을 탄다는 데야 할 말 없고, 도로변이라 복장이 쉽게 지저분해질 테니 골치도 아팠겠다.

마 순경이 안전에 도움이 된다지만, 국가가 백성을 속이는 격이어서 찜찜하긴 했다. 진짜와 함께 운용되던 가짜 과속단속 장비가 여론의 뭇매를 맞아 철거된 예와 흡사하다. 가짜에 걸맞게 누가 ‘마 순경’이라 이름 붙였는지 절묘하다. 마네킹의 첫 글자를 딴 ‘마’인 줄 몰랐던 때는 마에가리まえがり라는 일본말을 슬쩍한 것 같았다. 군대에서는 미리 받거나 당겨 받는 뜻인 ‘마이가리’로서, 상위 계급을 사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나도 마 중사 노릇을 해본지라 동네북 신세가 된 마 순경이 가련하다.

진해에서 셋방살이할 때였다. 만년 하사로 접어들자 이웃들 보기가 민망했다. 더구나 큰 딸애가 태어났으므로 중사 정도는 달아야 면이 설 터였다. 깡통 계급장이라고 하찮게 여길 일이 아니다. 딱지놀이에서야 대장도 별거 아니었지만, 현실은 엄중했다. 나이롱뽕을 해서 따는 계급이 아닌 터, 입장 바꿔 겪어보면 절감할 것이다. 나는 어느 날부턴가 마 중사가 되어 있었다.

통제부 정문을 나와 셋방이 가까워지면 자전거를 멈췄다. 하사 계급장을 떼고 중사 계급장을 붙이기 위해서다. 마치 노상 방뇨 자리를 찾는 양, 사람이 뜸한 곳이어야 했다. 근무복의 깡통 계급장은 나사를 풀어 죄고, 전투복에 달린 베 계급장은 찍찍이로 떼고 붙였다. 출근할 때는 반대였다. 그 짓을 하지 않으려면 이사를 하던지, 이웃에게 하사라고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당 깊은 집 문간방에 셋집 둘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한 지붕 아래 반분해놓은 집이라 고만고만했다. 칸 지른 판자의 성긴 틈 사이로 이웃 부엌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옆방에도 신혼부부가 살았다. 밀양 박 씨인 바깥양반은 덩치깨나 있는 사람이었는데, 임업 시험장에 다녔다.

어느 날 90cc 새 오토바이가 머플러를 벌겋게 달군 채 골목에 들어섰다. 박 씨에게 산림 감시용으로 오토바이가 배정되자 서울에서 받아 타고 진해까지 온종일 내달려 온 것이었다. 남향 천릿길을 굽이굽이 돌아오느라 흙먼지가 풀썩거렸다. 개선장군이 된 것 같은 박 씨가 갈증을 면할 겸 술 한잔하자며 아내와 나를 불렀다. 번쩍이는 새 오토바이는 알전등 불빛에 비쳐 양주집 소품인 양 운치를 더했다. 부침개 일색이었던 주안상에 삼겹살이 지글거리자 행복한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관용이긴 했으나 통근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오토바이여서 박 씨 입이 귀에 걸린 날이었다.

나는 그가 고용원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짐짓 모른 체하며 박 문관이라 불렀고, 그럴수록 잔은 넘쳤다. 박 문관도 내가 마 중사란 걸 모를 리 없었겠지만, “윤경이 아빠.”라 불러 주었다. 우리는 이웃사촌이 되어 부엌문을 들락날락하며 회포를 풀고 살았다.

무골호인 같은 그도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술이 불콰해지면 마누라를 패는 것이었다. 살림살이가 깨지고 두들겨 맞는 소리가 퍽퍽 날 양이면 애처로운 ‘넘의 새댁’은 사네 못 사네! 꺼이꺼이 울었다. 동병상련이라, 만년 고문관인 설움이 오죽했으면 저러랴 싶었다. 박 씨 부부가 싸우는 날 밤이면 아내와 나도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얇은 벽 너머 방앗소리가 리얼해서다. 박 문관은 때려놓고 달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날이 밝으면 판자 사이로 옆 부엌을 슬쩍슬쩍 들여다봤다. 그녀는 멍든 얼굴을 계란으로 살살 비비며 아침상을 차리곤 했는데,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배시시 웃었다. 부부싸움은 물 베기가 틀림없었다.

그해 겨울, 학수고대하던 진급 합격자 발표가 났다. 한없이 좋았으나 정작 진급은 아득했다. 정원定員이 빈 때가 되어야 비로소 계급장을 달 수 있었다. 고단한 마 중사 생활은 이듬해 가을까지 이어졌다. 어찌어찌 겨울 가고 가을 오자 그제야 계급장을 온전히 달았다. 가치假齒를 본 이빨로 붙인 거와 진배없었다. 공교롭게 그즈음 박 씨도 정식 군무원으로 등용되었다.

“김 중사, 욕봤소.”

술잔을 그득 채우며 박 씨가 축하했다.

“피차가 일반이오.”

내가 화답했다. 멍 받던 계란은 번철로 직행하고, 집집이 방아가 잘 돌았다.

버거운 시절을 함께 나눈 박 문관은 마 중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셋방을 밝히던 알전등 불빛이 하도 애잔해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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