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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정원 / 김상용

부흐고비 2021. 8. 4. 08:45

거리를 나서면 초라한 내 집에 비해 너무 거만한 고루대하가 내 시야를 어지럽힌다. 이런 때에 위압을 느끼면서도 오히려 그 과대광적 거구를 민소해, 내 청빈을 자부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지막한, 얌전한 집의 향이 남이요, 거기 아담한 뜰이 곁들여 있으면 내 마음은 달라져 문득 선망을 금치 못하니, 정원에 대한 애욕은 도시 천생의 내 업화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뜰과 인생'의 관계는 너무나 밀접하니 이를 사랑하고 갈구함은 인간 자연의 성정이 아닐까.

인생의 안식처를 가정이라 하여 집과 뜰을 연결해 놓은 데 이미 무슨 심비한 의미가 은장 된 듯도 하다. 뜰 없는 집은 사실 내외 불화 이상으로 살풍경일 수 있다.

널찍한 뜰, 거기 몇 주의 고목이 서고 천석의 유아가 있고 화초마다 곁들여 심어졌다면, 사람이 누리는 부로 예서 더 큰 것이 없으리라.

그러나 어떻게 그런 큰 복을 바랄꼬.

세 평만 뜰 앞에 두어도 평생을 즐기기에 족하니, 한 평에 정향과 산사를 심음으로써 오월의 향훈을 맛보고 반 평에 국화를 가꾸어 유연히 남을 볼 수가 있다.

나머지 평반에는 반드시 상추와 쑥갓과 실파를 기를 것이니, 복중 한나절, 일 뒤의 땀을 씻고 찬밥과 고추장의 진귀를 얼마나 호화롭게 상미할 것이요.

세 평 정원의 진취를 각기 제 집에서 즐길 수 있게 하므로 이 세상 범죄와 타락의 반감을 보증할 수 있다는 허망 아닌 내 신념인지라, 개나리 피려는 계절을 당해 감히 삼평 정원 개유론을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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