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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너만 모른다 / 진연후

부흐고비 2021. 9. 3. 08:15

느닷없이 네 앞에 거울을 들이대면 아마 놀랄 걸. 네 무표정이 낯설다싶을 거야. 네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옆에 있을 땐 더 심하지. 그 때 그 엄마 생각나지? 배우처럼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는 또렷하고 삼십대 초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동안이지만 항상 못마땅한 표정의 모습, 다른 선생들이 눈 한 번 마주치고는 뒤로 물러났잖아.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굴을 온통 망가뜨렸던․ ․ ․ . 드라마에 CG를 넣는다면 레이저 나오는 눈, 독을 뿜어내는 입을 실감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잖아. 넌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정도의 차이라는 거지. 그래 알아, 네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건.

그렇지만 너만 모르는 게 있어. 사실 너는 네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정말 모르겠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싫을 때 네 표정이 어떤지? 쑥스럽거나 민망할 때 말투가 무척 어색하게 되고 어떻게 바뀌는지? 어떤 상황을 부담스러워하는지,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지, 지금 네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너도 너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 남들이 너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너만 모르고 있는 것처럼. 아니. 평소 모른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겠지.

요즘은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 올리잖아. 의식하지 못하고 찍힌 사진 속 네 표정은 어때? 너무 낯설지 않아? 네 얼굴이, 입 모양이, 눈동자가 저런 느낌이라니․ ․ ․ . 밝지도 않고 예쁘지는 더더욱 않고 편안한 것도 아니고. 삼십대 이후, 아니 사십대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지낸 거야? 저 얼굴을 만든 건 누구니? 너는 그냥 얘기한 건데 화내지 말라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리둥절한 적도 있잖아. 그 때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 봐. 어쩌면 네 표정이나 말투가 상대에겐 그렇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지 않니? 지금까지 너만 모르고 너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네게 있었던 거라면 말이야.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뚱하고 있어? 저 사람은 너무 부정적이지 않아? 얼굴에 불만이 가득 찼네. 저렇게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남들을 평가하는 건 쉽지. 네가 느낀 대로 말하면 되니까. 그런데 정작 네 모습은 모르는 거야.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말해주지 않고 그 순간을 모니터할 수도 없으니까. 끝내 너만 너를 모르고 마는 거지.

수업시간, 가끔씩 엉뚱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회성이 뛰어나다싶은 한 녀석쯤은 순발력을 발휘한다.

“샘, 웃는 거 진짜 이뻐요.”

“슬쩍 넘어가려고 아무도 안 믿는 소리 하지 말고 작품 주제나 얘기해 봐.”

순간, 내가 잘 안 웃는구나. 수업시간에 많이 안 웃는구나. 아이들한테는 표정도 표현의 일종이라고, 웃는 표정이 얼마나 예쁜 줄 아느냐고 말하면서 정작 내 표정은 건조하구나. 아이들의 예쁘다는 말이 얼굴 생김새가 아니라 인상임을 안다. 생긴 건 의학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크게 변화될 수 없음을 진즉에 알고 있다. 그런데 인상, 분위기라면?

엄밀히 말하면 무표정이란 없는 것 아닐까. 감정을 알 수 없는 것도 하나의 표정이니까 말이다.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도 있다. 특별한 생각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기분 좋은 표정을 가진 이들이 있다. 물론 그것도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리라. 내가 갖고 싶은 표정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눈꼬리는 부드럽게 내려온 모양이다.

지금부터 의식적으로 연습하다보면 누군가에게 아무 때나 찍혀도 외면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 나올까? 거울에게 묻지 않아도 자신할 수 있는 표정을 가져볼 수 있을까? 지하철에서 맞은편에 있는 이들을 본다. 온화하고 편안해 보이는 얼굴을 찾아 슬며시 미소를 지어본다. ‘그거 알아요? 당신, 참 편안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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