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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쌀 한 톨의 철학 / 김형진

부흐고비 2021. 9. 18. 08:01

“맨땅 천 길을 파 봐라, 어디 쌀 한 톨이 나오는가.”

부엌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음성에는 견고한 믿음이 실려 있다. 또 막내가 밥알 붙은 솥을 그대로 씻고 있었나 보다.

이 근년에 와서 어머니의 관심사는 온통 쌀 한 톨에 집중해 있는 듯싶다. 불편한 거동으로도 끼니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밥솥을 살피고 수시로 쓰레기통을 검사한다. 그러다 밥알 붙은 솥을 그대로 씻어 내거나, 누렇게 식은 밥 한 술이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하면 매번 그 끝없는 잔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그까짓 밥알 몇 개가 무슨…….”

막내의 불평은 어머니의 할머니답지 않은 큰 소리에 주눅이 들어 버린다.

“뭐시 어찌야, 이까짓 밥알이야…….”

거실에서 할머니와 손녀의 말다툼을 듣고 있는 나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다. 막내가 할머니의 기세에 눌려 삼켜버린 말이, 한 끼 쌀값이 광장 다방 커피 한 잔 값도 못되는 요즘 세상에 그까짓 밥알 몇 개에 기운 다 빼앗기고 살아야 하느냐는 반박일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내색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랬다가는 어머니의 불호령을 피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으니…….

나는 여직 어머니가 언제 어디서도 밥알은 물론이고 낟알 하나도 소홀히 다루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밥솥 바닥에 뭉개진 밥알은 물론, 쉬어 빠진 밥 한 알도 허투루 흘려보내는 일이 없었다. 뭉개진 밥알은 몇 차례 모아서 누룽지 죽을 만들었고, 쉬어 빠진 밥은 단술을 만들어 먹었다. 그래도 남은 찌꺼기가 있으면 구정물통에 받아두었다가 가축 먹이로 썼다. 절구질을 할 때에는 미리 방석을 깔아 낟알 한 톨 흘리지 않게 했고, 타작을 할 때면 북데기가 가루가 될 때까지 바스러뜨려 낟알 한 톨 내보내지 않았다.

“내가 쪼깐이 적 이 두 눈으로 똑똑허게 본 것인디, 우리 할매는 가실 끝난 논배미를 다 뒤지고 다니먼서 흘린 나락 알 하나까장도 죄 줏서 모았어야. 맨땅을 천 질 판들 어디 나락 한 알 나온다냐고 허먼서.”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의 곡물에 대한 집념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인 듯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후대에 이어주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지 억지는 아니리라. 그런데 그것을 거역하는 후대를 세상이 달라졌다는 핑계 하나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내가, 예전에는 농사를 주로 하는 때여서 곡물이 생활의 주요 수단이었고, 또 그때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여 낟알 한 톨이라도 아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지금은 살기가 좋아져 온갖 음식물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는데, 지금도 가난하던 시절의 생활습관을 고집해서야 되겠느냐 하고, 어머니의 외곬을 꼬집어 본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한 어머니의 반박은 드세고도 거침이 없었다. 내가 어머니의 반박을 듣고 나서 ‘쌀 한 톨의 철학’이라는 말을 생각해 낼 수밖에 없으리 만큼 논리적이기까지 했다.

사람이 땅에 발을 붙이고 밥을 먹고 사는 한,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으뜸이 되는 것은 농사를 짓는 일이라 했다. 공장에서 물건을 산더미만큼 만들어 내고 그것을 팔아 수억만 금을 벌어들인다 한들, 그것만으로 사람이 먹고 살 수는 없는 일이지 않느냐, 그리고 농사란 절기에 맞추어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가꾸어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이는 자연의 기운에 사람의 기운을 더하는 오묘한 조화이다. 땅을 몇 해만 묵혀두어도 황폐하여 못 쓰게 되는 것을 보면 농사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생업 중의 생업임을 알 수 있다. 요즈음 땅이 병들고 하늘이 제 빛을 잃어가는 것은 농사를 업신여기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또 땅은 눈곱만큼도 거짓이 없어 뿌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으며, 땀을 흘려 가꾼 만큼의 소득을 준다. 그렇다고 욕심이 지나쳐 많이만 뿌린다고 많은 소득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재앙을 받는다.

그러한 농사의 결정체는 뭐니 뭐니 해도 곡식이요. 그 곡식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것이 쌀이니, 그 쌀 한 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냐. 그렇게 소중한 것을 함부로 흘리는 행위는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요즈음에 와서 세상이 좋아져 모든 것이 풍족하다고들 하지만, 이는 언제 사라질는지 모르는 도깨비 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과 진배없다. 세상이 별스럽게 바뀌어도 농사를 그만두면 그 세상은 끝장이요, 농사가 지속되는 한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쓰레기통 검사까지 마친 어머니가 안방으로 들어간 뒤에야 막내는 무어라고 구시렁거리며 거실로 나와 의자에 앉는다. 불그레한 낯빛에 입술을 빼물고 있는 품이 ‘할머니는 해도 해도 너무 해. 솥 가에 붙은 그까짓 밥알 몇 개가 뭐 그리 대수라고.’ 이런 하소연을 하고 싶은 듯하다. 나는 곁눈질로 막내의 안색을 살피다가 불쑥 엉뚱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너 밥 굶어 본 적 있냐?”

막내는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더니, 아버지가 던진 느닷없는 물음의 정답이 무엇인지를 아직 알아내지 못한 표정인 채로 살래살래 고개를 젓는다.

“너도 밥을 굶어 봐야 할머니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사람들이 밥을 굶는 세상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비는 마음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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