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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축산 할매와 병곡 할매 / 윤영

부흐고비 2021. 10. 26. 09:05

엄마는 뇌경색으로 세 번의 수술을 받았다. 후유증 탓인지 본래의 모습을 기대한다는 건 욕심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어루만지거나 손을 잡았다. 그 일도 심드렁해지면 밖으로 나가자고 십여 분 간격으로 졸랐다.

“야야 나를 바구니에 담아 옥상 꽃밭에 던져놓고 가거라. 까마귀랑 놀구러. 지은 죄도 그리 많지 않구마는 왜 자꾸 병실에 감옥살이 시키노.”

예의 그 바구니라는 휠체어에 엄마를 앉혀 병원 담벼락을 따라 야트막한 산책로를 돌았다. 십자가가 보이면 기도하랴 날아가는 새들에게 손 흔들랴 한 손이 바쁘다. 날이 차가운지 이내 들어가자고 난리다. 할 수 없이 병원 옥상에 자그마하게 꾸며 놓은 꽃밭 가운데 엄마를 모셔놓고 찬송가를 틀어주었다. 때론 고개 숙인 해바라기였다가 때론 박꽃으로 핀다. 조용하다. 순식간에 꽃 몇 송이를 댕강댕강 잘라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엄마 와 자꾸 꽃을 꺾노?”

“머리에 혹불 난 젊은 새댁이 하고 영덕 축산 할매 줄라꼬.”

머리에 혹이 난 새댁은 같은 병실의 환자이며 축산 할매는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알게 된 동향의 할머니였다. 두어 달 지내는 동안 서로가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동무처럼, 자매처럼 가까워졌다. 작업치료를 하면서 콩을 컵에 옮기는 일이 힘들고 물리치료사 가시나는 아프게 하니 마음에 안 든다고 흉을 본다. 성치 않은 입놀림으로 절반의 언어는 새어 나가고 절반은 알아듣기도 어렵지만 죽이 척척 맞았다. 서로의 얼굴을 두드려 주기도 하고 눈을 감고 떴다 돌리기도 하며 목을 돌리고 소리 내어 서로의 이름도 부르며 좋아라 한다.

“참 그짝은 영해 어느 미용실 가니껴?”

“나는 옥이미용실 가니더.”

“글니껴 나는 현미용실 가니더.”

“우리는 머리 볶으마 집까정 원장 선상이 태워주니더.”

“우리도 집까정 태워주는 거야 기본이제요. 영해 장날에 미용실에서 모여가 밥 비벼 먹는 재미가 원카 좋아서 맨날 장날만 기다리제요.”

“아이구 우리 얼렁 나사가지고 같이 머리 뽂으러 가시더.”

“글치만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낼똥 몰시더. 아무래도 못 돌아가지 싶니더 안 글리껴.”

축산 할매가 춥다고 병실로 돌아갔다. 엄마는 까마귀를 또 부른다.

“니는 저 새 이름이 뭔지 아나?”

“까마귀잖아.”

“야야 저 새는 넋이새란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생전 이루지 못한 소망을 넋이새가 다 이루어서 돌아온다는 새라네.”

나는 한마음 부릴 곳이 없어 애먼 꽃잎의 잎사귀를 똑똑 딴다.

 


 

윤영

2005년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문학상(2019), 대구문인협회작품상(2017),

제1회달구벌수필문학상.

저서 《사소한 슬픔》 《아주 오래 천천히》.

한구수필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토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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