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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낱낱이 아프다 / 윤영

부흐고비 2021. 10. 26. 09:18

빗줄기가 도드라지는 사이 잠에서 깼다. 사나운 꿈을 꾼 것도 같다. 가로등 빛이 격자 유리창을 투과해 천장에 기찻길을 냈다. 내가 기차를 처음 타본 것은 스물 두셋 정도였을 것이다. 모자를 거꾸로 쓰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던 친구, 김밥과 통닭을 챙겨왔던 친구. 그렇게 동갑내기 예닐곱 명이 모여 영천 은해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고대하던 동요의 풍경은 기찻길 옆 어디에도 없었다. 칙칙폭폭 기적소리를 내며 오막살이집과 옥수수밭을 스쳐 가리라 생각했건만. 꽤 무거운 충격이었을까. 여전히 기억의 언저리에 남았다. 정작 생애 첫 기차를 탔던 내 모습은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답답하다. 날 밝으면 사라질 기찻길을 보고 있자니 지워질 일이 비단 저 그림자뿐이겠는가 마는, 동무들 생각 간절하다.

발목이 서늘하여 목이 긴 양말을 신고 베란다로 나갔다. 재미 삼아 심어놓은 모종들이건만 비실비실한 채소들을 보고 있자니 난감할 수밖에. 상추 세 포기는 고꾸라졌고 두 포기는 이미 녹아 줄기만 남았다. 당귀는 누렇게 떡잎이 졌다. 가지와 고추는 석삼년 후에나 꽃을 피우려는지 새초롬하니 열매 보기는 글렀다. 덤으로 심어놓은 채송화마저 짓물러 형편없었다. 무너지고 있는 것들을 보니 곤경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오롯이 나의 게으른 소치가 불러온 것들. 죄를 짓는 일은 하나둘 늘어만 가는데 벌은 받기 싫은 심정이랄까. 딱 지금이다.

요컨대 불쑥불쑥 악몽처럼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여학교 때의 일이다. 동산의 라일락꽃이 만발하던 오월,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늙수그레한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우더니 다짜고짜 몽둥이로 후려치고 뺨을 때렸다. 왜 맞아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수십 년이 지난다. 자다가도 그의 찢어진 눈매를 떠올리면 식은땀이 난다. 생사조차 모르지만 용서하지 않았다. 그렇게 앙금으로 남아있던 그를 내가 용서한다는 일은 실로 만만찮은 일이건만. 헌데 복수가 요 몇 해 전부터 식어가고 있더라는 거. 좀은 홀가분해지고 싶은 건가. 이러다가도 억울함에 다시 복수가 밀치고 올라오는 건 아닌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라는데. 정말 묻고 싶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이렇게 눌러 담아놓지 말고 애초에 물어볼 것을.

아직 아프다.

톨스토이의 <어린 시절>을 읽다가 책장을 덮었다. 머리가 복잡하다.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한 페이지가 지워지니. 그의 열 살 무렵 가정교사였던 ‘칼 이바니치’와 집안일을 돌봐 주시던 ‘니콜라이’ 할아버지가 헷갈리고 직업이 헷갈린다. 러시아의 지명과 백작들의 이름이 뒤섞인다. 책 한 권을 다 읽어도 주인공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러시아 소설 같은 나이가 쉰에서 예순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지금 그 나이를 건너는 중이다. 실로 두렵고 다분히 아프기도.

결국, 러시아 이름들을 벗어나기로 한다. 쭈글쭈글한 무릎을 꿇고 탁자에 팔꿈치를 대고 이영광 시인의 시를 읽는다. 수시로 욱신거린다. 얼마 전 허리통증에 병원을 찾았더니 ‘척추전방전위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척추뼈가 배 쪽으로 밀려 나갈 때마다 지긋한 고통이다. 몸은 과거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질 않는가. 수시로 내 몸은 통점과 한계 중량을 미리 알려 주었으나 마음과 몸의 불화로 삐걱대기만 했으니. 무슨 일이야 있겠냐만 일을 함에 있어 자신이 없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몸을 아끼지 않은 죄야 있지만 수굿하게 구원을 청한다. 이쯤에서 더는 나빠지고 싶지 않다고.

‘무릎’이라는 시에서 멈추었다. 다른 살로 기운 듯 누덕누덕하지만 걸음마를 시작하기 전에는 기고 걸은 뒤에는 더러 꿇기도 했다고. 저렇게 아프게 부러지고도 태연히 일어나 걷는 게 무릎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글쎄. 죄다 나를 두고 적은 시 같다. 아니지. 우리 삶이 대부분 이러질 않던가. 지극히 간절하거나 지극히 쓸모없거나를 되풀이하는 일. 어쨌든, 이제 더는 무릎 꿇어 굽힐 일만은 없었으면 하네. 좀 처연하고 좀 가진 것 없고 좀 덧없다 생각 들면 어떤가.

여하튼 오늘은 여기까지다. 나잇살 그다지 깊어지지도 않았으면서 마음부터 주름지니 가관이라는 말 듣기 전에. 하긴 내가 낱낱이 아프다고 고백을 일삼아도 깨알 같은 걱정이라도 하는 이 없다. 너는 앓거나 말거나 드라마를 보고 닳은 자동차 바퀴를 갈아 끼우고 카페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텐데. 어차피 사는 일이 얼락녹을락* 아니던가.

* 얼락녹을락: ①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는 모양. 또는 얼 듯 말 듯 하는 모양. ②남을 형편에 따라 다잡고, 늦추고, 칭찬하고, 책망하고, 가까이하고, 멀리하여 놀리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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