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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해감 / 양희용

부흐고비 2021. 12. 8. 08:17

TV에서 갯벌의 먹거리 체험과 관련된 방송을 한다. 벌교에 여행 가서 다양한 꼬막 요리를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꼬막 중 벌교산이 최고로 대접받는다. 인근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감싸는 벌교 앞바다의 여자만汝自灣갯벌은 모래가 섞이지 않고 오염도 되지 않아 꼬막 서식지로는 최적이라고 한다. 여자만의 갯벌은 생명의 땅이고, 꼬막은 생존을 위한 식량이다.

오래전부터 꼬막 채취는 여자들의 몫이다. 길이 2m, 폭 50㎝ 정도의 널빤지로 만든 널배를 타고 갯벌을 샅샅이 훑어야 한다. 배라고는 하지만 동력이 없어 갯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갯벌용 스키라고 할 수 있다. 왼쪽 무릎을 꿇은 채 널배 위에 올려진 플라스틱 양동이에 가슴을 기대고 엎드려 작업한다. 오른발로 갯벌을 밀어 이동하면서 양손으로 꼬막을 캐내어 그물망에 담는다. 갯벌에서 이동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활주로 위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경비행기처럼 보인다.

꼬막 요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해감이다. 해감은 흙과 유기물이 바닷물에 썩어 생기는 냄새나는 찌꺼기나 그것을 뱉어내게 하는 과정을 말한다. 꼬막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방법은 개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소금물에 담가 검은 비닐봉지로 덮어준 후, 서너 시간이 지난 다음 끓는 물에 데치는 게 일반적이다. 꼬막이 자연스럽게 찌꺼기를 토해내도록 하고 먹기 좋게 익히기 위해서다. 알맞은 시간과 화력으로 해감을 깔끔하게 잘해야만 통통하고 쫄깃한 꼬막의 식감을 즐길 수 있다.

꼬막 속에는 살과 이물질만 있는 게 아니라 꼬막을 채취한 여인네들의 응어리도 스며들어 있다. 시집을 오자마자 갯벌로 나가 칼바람을 맞으며 몇 시간을 널배에 엎드려 작업하는 고통, 나는 힘들어도 자식들은 성공해서 잘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마음, 더 따뜻하고 넓은 집을 장만하기 위한 인내와 끈기가 갯벌과 꼬막 속에 배어 있다. 그 여인네들의 멍울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고사를 지내듯 정성을 다해 해감해야 한다. 요리할 때 재료의 소중함과 농어민들의 노고를 생각할수록 더 맛깔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만들 수 있다.

해감과 관련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큰처남이 사는 하동에 가면 재첩국과 재첩 회무침을, 친구가 농사짓는 청도에 가면 추어탕을, 혼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집에 가면 홍합짬뽕을, 육류보다 조개류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즐겨 먹는다. 애주가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알코올 기운에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을 섞어서 정신적 균형을 잡으려는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해감이 깔끔하게 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종일 몸 상태가 좋지 않고 기분도 왠지 찜찜하다.

해감은 예나 지금이나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중요한 요리 과정이다. 해감을 어설프게 했다가 처벌받은 요리사도 있다. 즐겨 보았던 드라마 「대장금」의 내용과는 달리 수라간의 나인들은 식재료 준비와 수라상 운반 등의 보조업무를 맡았다. 사옹원司饔院의 진귀한 요리는 '숙수熟手'라는 천민 출신의 남자 요리사들이 대부분 만들었다. 1903년, 대령숙수들이 만든 홍합 요리를 고종이 먹다가 이가 부러졌다. 그로 인해 네 명의 숙수가 곤장을 심하게 맞았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일을 더 잘하려고 신경을 쓰다 보면 간혹 실수할 때가 있다.

해감은 조개류가 평소 몸속에 쌓아온 노폐물을 토해내는 과정으로 일종의 '자기정화自己淨化'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외모를 예쁘게 꾸미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지만, 마음속에 축적된 앙금이나 응어리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여 정신적 안정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마음이 정화되어야 일상이 편하고 외모도 밝아진다. 어쩌면 해감은 조개류보다 사람에게 더 필요하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감정의 응어리가 쌓이면 속병으로 남는다. 얼마 되지도 않은 재산 상속 문제로 형과 소원하게 지낸 적이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유산은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병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신 형의 몫이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어머니의 임종이 다가오자 나도 똑같은 자식이고 어머니를 위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으로 재물에 눈이 멀었었다. 장례를 끝내고, 마치 남인 것처럼 형과 옥신각신했다. 냉전의 시간이 두어 달 지나면서 형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당장 찾아가 사죄하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근심과 걱정이 쌓이면서 병이 날 것 같았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밤늦게 형이 사는 동네로 차를 몰고 가 포장집에서 형을 만났다. 형수와 조카들에게 민망스러워 차마 집으로 찾아갈 수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형에게 소주잔을 권하며 눈물로 사죄했다. 형은 이해한다며 나의 등을 몇 번 쓸어주었다. 우리 가족이 힘들게 살았던 시절과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함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두 시간 넘게 술을 마신 후 형의 집으로 가서 함께 잠을 잤다. 아침에 형수는 시원한 홍합탕을 끓여주었다. 응어리를 해감하듯 말끔하게 씻어낸 후, 이제 이전처럼 허물없이 잘 지낸다.

요즘 몇몇 사람의 욕심과 야욕으로 가슴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 관한 뉴스를 자주 듣는다. 경찰의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으로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평범한 시민,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에게 학창시절 폭행이나 금품갈취를 당했다는 선량한 젊은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하인이나 머슴처럼 취급받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응어리가 쌓여있을까. 그 종양은 물질적인 보상이나 수술로 제거되지 않는다. 스스로 토해내고 마음을 정화하기도 매우 힘든 일이고 모든 시간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없다.

우리 사회와 이웃이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토닥거려주어야 한다. 꼬막처럼 완벽하게 해감하기는 어렵더라도 가슴에 맺힌 한을 조금이나마 덜어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해감하는 과정이 개인마다 다르듯 마음속에 사무친 응어리와 앙금을 풀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각자 나름대로 하나씩 갖고 있으면 좋겠다.

상처를 받고 싶지 않으면 주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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