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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상작
색종이 위에 온 마음을 담는다. 모서리를 맞추어 엄지로 지그시 누른다. 멀리 떨어진 꼭짓점을 맞대고 힘주어 문지른다. 접을수록 좁아지는 종이를 따라 마음도 쪼그라든다.
종이접기는 유년의 나를 다양한 상상의 나라로 데려갔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올라 손오공을 만나고, 돛단배를 타고 무인도에 발을 디뎠다. 종이 인형에 빨간 저고리와 초록 바지를 입히며 엄마가 된 듯 흐뭇했다. 완성품을 만날 때마다 동심은 꿈속을 걸었다. 그 뒤로 성취감과 자신감이 따라왔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색종이는 시야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종이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해 좌충우돌하며 마음의 종이를 무던히도 접었다. 교과서적인 자를 들이대고 접은 모서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결혼 후 사 년 만에 우리 부부는 생명의 싹을 얻었다.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던 무거운 커튼이 걷혔다. 하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기쁨을 느끼는 것은 잠시였다. 어머님과 남편은 내 몸속의‘점’이 훌쩍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성장 과정을 짚어가며 직장을 그만두도록 다그쳤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어머님의 생각은 단호했다.
팔 년 동안의 교직 생활은 어려움도 많았지만, 아이들과 만남에서 생기를 얻었고 보람도 많았다. 어려운 일을 함께 헤쳐나가고 꿈을 심어주는 일이 신나고 재미있었다. 직장을 그만두면 나는 없어지고 남편과 아이의 조력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며느리와 아내의 삶에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 시어머님과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눌러 접었다.
퇴직 결정을 해야 하는 한 달 동안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드나들었다. 어린 시절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을 때 혹시라도 엄마가 없는 날은 텅 빈 마음을 달래느라 괜히 문풍지를 뜯었다. 태어나는 아이에게 허전한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다. 서늘했던 유년의 기억들이 접었던 마음을 펴라고 재촉했다. 마지막 출근하던 날 교정을 나서는 나를 향해 창문에 옹기종기 붙어서 손을 흔들던 아이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사람 살이가 끊임없는 접고 펴기의 연속이 아닐까.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났지만 펴는 것은 나의 몫일 게다. 종이를 접을 때는 머리와 손이 속삭이며 신중하게 접는다. 하지만 펴는 것은 책장 한 장 넘기는 만큼이나 쉽다. 마음접기는 나도 모르게 접히고, 펴기는 너럭바위를 옮기는 만큼이나 어렵다. 이해, 용서, 사랑 같은 넓은 품이 필요해서이리라.
몸속의 관절은 쉴새 없이 오므리고 펴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난다고 말한다. 관절의 접고 펴는 작동이 없으면 한시라도 살아갈 수가 없을 게다. 기지개를 켜면 혈관이 유연해지면서 온몸 구석구석으로 피가 흐른다. 새도 날개를 펼쳐야 높이 날아올라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은가. 마음을 편 길 위에 건강하게 성장하여 사회인이 된 두 아들이 서 있다. 내 이름을 남길만한 큰일은 못 했지만, 세상을 떠나더라도 나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다.
종이가 된 나무도 비바람과 해충, 아래로 향하는 자연의 힘을 견디려고 무던히도 접고 펴는 생이 있었으리라.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낸 섬유소가 물에 부풀려져 체에 걸러지고 압착을 받아 종이가 되었다. 어쩌면 삶의 이정표가 되어 내 앞에 놓여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램을 실어 띄우던 종이배를 만든다. 접었던 흔적의 선들이 다음 접기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살면서 마음접기로 그어진 선들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주었던 게 아닐까. 접고 펼치기가 반복되는 과정이 있어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요양보호센터 어르신들이 종이접기 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굵은 주름이 생겨 고랑을 이룬 손으로 느리게 종이를 쓸어내린다. 신은 인간에게 빌려주었던 능력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거두어가는 듯하다. 두뇌의 유연성, 고막의 탄성, 뼈의 강도, 근육의 힘을 반납 중이신 어르신들은 이 세상에 첫발을 디딜 때의 모습처럼 어눌하다. 신의 섭리 앞에서, 말라가는 줄기 끝에 물기를 공급하려는 듯 어르신들의 온 마음이 종이 위에 놓여있다.
간단한 꽃을 만들고 나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종이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웃음 속에는 다사다난했던 인생이 보인다. 고단했던 삶을 이어준 힘은 종이접기가 끝났을 때 찾아온 기쁨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미로를 걸으며 마음을 접고 펴면서 수많은 완성품을 만들었지 싶다. 어르신들의 기억은 접촉 불량의 형광등처럼 불규칙적이지만, 느릿하게 종이접기를 하며 아직도 마음 접기를 하고 있으리라.
책꽂이 한 편에 인생의 보물이 놓여있다. 교직 사 년째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던 날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이다. 이사 다닐 때도 천 마리의 학이 든 유리병은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다.‘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라는 소문을 아이들은 믿었던 모양이다. 선생님의 행복을 바라며 유리병 속에 수천 번의 접고 펴기를 담았으리라. 생각이 실타래처럼 엉길 때 병을 보며 마음 펴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헤르만 헤세는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변화와 도피뿐이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수십 번의 생일을 맞으며 끝이 없었던 나의 도피처는 마음속의 종이접기였다. 이순이 넘도록 꾸민 동산에 갖가지 꽃과 벌, 나비가 보인다. 꿈을 실어나르던 비행기와 배가 느리게 움직이며 여유로움을 운반한다. 마음을 접고 펴면서 만났던 다양한 인생길이 이제는 삶의 의미와 멋으로 다가온다.
접었던 종이를 편다. 덩달아 넓어지는 마음 위에 한 마리의 학이 날개를 펼친다.
수상소감 - 학처럼 힘차게 나는 연습을 |
전화기 너머로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제 손바닥에서 고이 잠들어 있던 종이학이 비로소 날개를 펄럭였습니다.
인생길을 걸으며 마음을 접었다 펴기를 수없이 되풀이한 지난 나날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좋아 어릴 때부터 꿈꿔 온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직장을 구하기 쉬운 이공계로 전공을 선택하면서 글쓰기 꿈을 접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로서기가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갖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사십 년이 훌쩍 넘어 눌러두었던 소망을 향해 걸음을 뗐습니다. 세상살이가 힘들어 마음 접을 일이 많더라도 순간순간 자신을 가다듬으며 희망을 품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부족한 글에 때로는 날카로운 평으로, 때로는 따뜻한 격려로 보듬어 준 포곡수필과 수필과지성 문우들, 수필다운 수필을 쓰라고 항상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내리시는 교수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아울러 어깨가 처져있을 때마다 용기를 주는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글로 인연을 맺은 모든 분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종이학의 날개에 힘을 불어넣어 주신 심사위원님과 전북도민일보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도록 학처럼 힘차게 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심사평 - 배귀선(수필가, 시인, 문학평론가) |
한 편의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삶의 양태를 개성적 색채로 그려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구성과 형식에 따른 어휘의 차용과 비유와 묘사에 더하여 논리적 사고뿐 아니라 강렬하면서도 잔잔한 스토리에 이미지가 덧입혀져야 한다. 수필도 소재를 이끌어나감에 있어 적절한 비유와 묘사를 통한 형상화와 그에 따른 주제의 구현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같은 장면의 표현이라 할지라도 어휘의 선택과 배열, 수식과 구성 등의 정도에 따라 감도가 달라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테면 진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험현실에 작가만의 창의(견자)의 시각 도출과 그에 따른 사유의 확장이 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즈음하여 올해 응모작 작품 전반은 극과 극이었다. 시제와 형식이 미흡한 작품들은 차치하고 주최 측 규정을 살피지 않고 작품에 응모자의 이름을 표기하거나 기 발표된 작품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사용한 자기표절의 예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윤리와 도덕을 에둘러 표현하기보다는 직설적 아포리즘으로 표현하고 있었으며, 수식관계가 어색한 문장 또한 다수였다. 더불어 지나친 수식이 수필 문장의 의미를 퇴색시키는가 하면 감정의 과잉이 오히려 독자의 시선을 흩어놓는 작품도 다수였다. 더 안타까운 것은 소재의 협소함이었다. 응모작품 태반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등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소재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가족을 바탕으로 확장된 서사에 따른 휴머니즘을 배면한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진술에 그친 작품이 태반이었다. 신춘문예 응모작이 천편일률적으로 가족 소재로 흐른다면 이는 수필 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하기보다 고착화하는 것일 터, 작가정신에 즈음한 응모자만의 새로운 시각이 절실한 이유다. 다행히 몇몇 응모자는 형식과 구성 소재의 새로움에 대한 시도를 하였으나 작품 전반에 녹아들지 못해 안타까웠다.
올해는 총 420여 편의 수필이 응모되었다. 밤을 새웠을 응모작 한 편 한 편이 소중하였기에 심사 내내 비평적 시각을 염두에 두고 세세하게 살폈다. 그 중 15명의 작품이 예심에서 가려졌고, 5편의 응모작이 최종심에 올랐다. 최종심에 오른 5편의 작품 중 안희옥의 <눈부처>는 관계의 삶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눈맞춤에 비유하고 있으나 예로 제시한 소재들이 긴밀하지 못해 주제의 집약이 흩어져 있어 아쉬웠다. 박덕은의 <신발>은 신발과 모자의 동질성과 상이성을 들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비유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글의 구성에서 실수가 엿보였다. 오미향의 <물허벅>은 비유와 상징이 상당한 수준에 있으나 같은 내용을 반복서술하고 있었으며, 특히 함께 제출한 응모작들에는 기 발표된 작품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사용한 점이 옥에 티라 하겠다. 오은정의 <겨울 동화>는 탈북의 과정의 긴박함을 회상장면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인 동화(冬靴)가 군인들이 신는 겨울 동화의 이미지로 중의성을 담보하는 가운데 삶의 고달픔을 은유하고 있으나 문장의 헐거움은 물론 시제와 문법의 혼란이 아쉬웠다.
늘 그렇듯 심사에서 한 명의 당선작을 선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최종심에 오른 5편 모두 약간의 흠결은 있으나 당선작에 올려도 손색이 없음을 먼저 밝힌다. 신춘문예 특성상 한 작품만을 선해야 하기에 심사자는 고심 끝에 이춘희의 <종이접기>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종이접기>는 종이를 접고 펴는 과정에 인간의 마음을 대입 비유함으로써 문학적 형상화를 이루었다. 예컨대 마음도 고달플 땐 접히고 그렇지 않을 땐 펴지는 전치의 효과와 그에 따른 성찰적 이미지의 구현이 돋보였다. 그러나 주제로의 집약이 다소 미약하다는 약점과 단락 간 긴밀성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로 판단된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당선작에 선한 만큼 정진하기 바란다.
끝으로, 420여 편의 작품을 낱낱이 읽는 예심보다 최종심에서 한 편의 당선작을 가리는 일이 어려웠고 시간이 더 소모되었음을 고백한다. 당선자에게는 끝이 아닌 다시 시작이라는 권면과 함께 축하를 보내고, 아깝게 낙선한 분들께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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