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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독도의 해돋이 / 김의배

부흐고비 2022. 1. 5. 09:00

독도에서 해돋이를 본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한반도의 귀중한 혈 육인 독도는 동해에 핀 꽃이다. 한국인의 가슴속에 영원의 꽃으로 피어 있는 독도에서 해돋이를 촬영하는 일은 가슴 설레는 감동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5월 8일 새벽 2시, 한국사진작가협회 남북교류분과 위원 17명을 태운 배는 깜깜한 저동항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동남쪽으로 씽씽 달렸다. 밤바다의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선실로 밀어 넣었다. 공기가 탁하다며 몇몇 회원들은 밖으로 나갔다. 나는 왼쪽 아래 침상에 누웠다. 잠시 눈을 붙였는가 했는데 사이렌 소리와 함께 회원들이 우당탕 뛰쳐나갔다. 나도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메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먼동이 트며 멀리 독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춤주는 파도 위에 여명의 독도가 우리를 반겼다.

“독도야, 너를 촬영하기 위해 그제 밤부터 서울에서 왔단다. 멋진 오메가를 두 섬 사이로 보여 주렴!”

촬영을 준비했다. 동녘 하늘이 벌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좋은 위치에서 촬영하기 위해 야단이다. 섬이 가까워지자 나는 두 대의 카메라로 번갈아 가며 셔터를 눌렀다.

“야! 해가 나온다.”

셔터 소리가 빨라졌다. 동도 우측 수면에서 초승달 같은 해님이 수줍은 듯 얼굴을 삐죽 내밀기 시작했다. 해가 두 섬 사이로 보이도록 배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두 섬 사이로 해가 솟았다. 평생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동해를 벌겋게 물들이며 솟아오르는 해는 황홀함과 감동, 그 자체였다. 해돋이 순간에 천지는 광명으로 환해지며, 만물에 빛을 고루 비추는 이 은혜로움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며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해돋이의 아름다움과 황홀함에 몸을 떨었다. 이토록 장엄한 자연의 신비에 잠겨본 일은 처음이었다. 한동안 숨을 멈추고 해돋이 장관에 정신이 팔려 셔터를 눌러댔다.

독도 해돋이 촬영은 나의 숙원이었는데 천우신조로 오늘 그 소원을 이루었다. 이는 축복이었다. 동도의 선착장에 배를 대고 독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감개무량했다. 뒤에서 “김 회장님!”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전에 '월간사진 서울클럽'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관중 씨다. 독도 사진전을 했던 독도 사진가다. 그저께 사진작가 열 명을 인솔해 왔단다. 어제는 독도 하늘에 패러글라이딩을 띄우고 섬 주위엔 모터보트를 달리게 하며 촬영했단다.

선착장에서 독도 주민 김성도 씨가 활짝 웃으며 양팔을 벌려 반겼다. 그와 태극기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파도가 심하면 배가 접안도 못 하고 그냥 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돌아간다는데 오늘은 파도가 없어 잔잔한 호수 같았다.

일출봉으로 올라가는데 갈매기들이 여기저기에 알을 낳아 품고 있었다. 우릴 보고 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려 소리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 내 알에 손대지 마!!” 하고 경고하는 듯했다. 대부분 알을 지키고 있는데, 알을 놔두고 날아가는 겁쟁이도 있었다. 머리 위를 휙휙 날면서 허연 물찌똥을 찍찍 갈기는 녀석도 있었다.

경비 경찰이 따라다니며 시설물은 찍지 말라는데, 물색없는 권 감사는 대포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찍으란다. 독도 지킴이 삽살개는 짖지 않고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韓國領’이란 글씨가 크게 새겨진 바위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11시에 서도로 갔다. 바위에 붙여 지은 3층 건물엔 독도 주민 김성도 김신열 부부의 문패가 걸려있고, 그 아래엔 우편함이 붙어있다. 남편은 웃으면서 기꺼이 모델이 돼주는데, 물가에서 홍합을 까고 있는 부인은 수건을 내려쓰며 찍지 말란다. 육지의 아들딸들이 싫어한다며.

서도 정상을 향해 중간쯤 올라가니 널판으로 된 계단의 양쪽 난간이 부서져 있다. 위험하니 내려가자는 이가 있어 내려왔다. 김 여인이 대한봉에 올라가 봤느냐기에 올라가다가 위험해서 내려왔다고 했다. 그는 여자들도 올라가는데 남자들이 못 올라가면 말이 되느나고 했다. 몇몇이 다시 올라갔다.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니, V자형 협곡 사이로 갈매기 떼가 나는 동도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이 시야에 들어왔다. 옆으로 돌아갔을 때, 일행은 그만 가자고 했지만, 나와 헌 회원은 계속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니 독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해발 168.5m 대한봉의 위용이 당당했다. “여기는 대한민국 영토다. 그 누구도 넘보지 마라!” 하며 호령하는 듯했다. 누가 뭐래도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다. 김장훈 가수는 이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거금을 들여 미국의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내고 있다. 일본인들이 그토록 탐내는 독도, 그들이 아무리 저희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엄연한 대한민국 영토다.

독도에서 일몰을 촬영하려 했는데 선장이 너무 늦다며 가자고 보채어 아쉬웠지만, 독도를 한 바퀴 돌며 촬영하고 울릉도를 향해 배가 속력을 냈다. 독도를 홀로 두고 떠난다는 마음에 독도가 시야에서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일행은 바람이 차다며 선실로 들어갔지만, 나는 선미의 태극기가 가리키는 독도를 보며 셔터를 눌렀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독도를 바라보며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타실에서 선장과 이야기를 했다. 가만둬도 배가 잘도 간다고 했더니, 목적지만 입력해 놓으면 스스로 알아서 간다고 했다. 오는 배와 충돌하면 어쩌느냐고 했더니 알아서 피해 간단다.

아! 언제 또 독도에 갈까? 6월 초에 갈매기 알이 부화하여 새끼들이 볼만하다는데..... 독도의 해돋이를 보고, 그토록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일을 해낸 오늘의 감격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동해를 환히 밝히는 독도의 해돋이 장면은 나의 가슴속에 감동의 빛으로 다가오고 있다.



김의배 수필가 《한국수필》 등단(1998).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한국문인협회 대외협력위원회 위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역임. 제33회 한국수필문학상, 한글문학상 대상, 세종문학상 대상 수상.

저서: 『고향의 푸른 동산』, 『독도의 해돋이』, 『백두산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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