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21년 제1회 충무공 이순신호국문학상 수필 대상

아침 8시, 상쾌한 마음으로 드르륵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저 온 선생님들과 간단한 아침 인사를 건네고 자리로 가 창문을 연다. 6월 초여름의 상쾌한 아침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다. 컴퓨터부터 켜고 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는다. 익숙한 커피 향이 머리를 깨워준다. 나름의 나만의 모닝 루틴으로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며 시간표를 확인하는 순간, 하. 그대로 한숨이 나온다. 오늘 5반 수업이 들어있구나.

교직 생활 7년 차, 이제 몇몇 학생의 유형이 내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 가는데 경준이는 그중 어려운 유형의 학생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는 아이. 선생님이 행여나 말을 끊을까 고등 래퍼에 나가도 될 정도로 빠르게 말을 내뱉고 고개를 숙이는 아이. 그 아이를 받아주자니 수업이 늘 딴 데로 새버리기 일수고, 그 아이 말을 받아주지 않고 적당히 끊으면 바로 수업을 포기하고 자버리는 아이다. 즉 그냥 내버려 두자니 교사로서의 양심이 찔리고 아이를 받아주자니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나에게 늘 고민거리를 주는 학생이 경준이다. 오늘은 또 어떤 엉뚱한 말을 할까?

4교시, 5반 수업이 시작되었고 교실에는 윙윙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백색소음처럼 깔렸다. 6월 호국의 달에 걸맞게 중3 국어 교과서엔 ‘임진록’이 실려 있다. 임진왜란 때 영웅들의 활약상을 담고, 패배한 전쟁을 문학에서나마 승리한 전쟁으로 바꿔 놓은 작품. 정신적 승리를 이루고 민족의 자존심을 되살리려 했던 이 훌륭한 작품은 그러나 종이 치면 다가올 급식 시간에 번번이 지고야 만다.

“자 지난 시간에 이순신 장군이 등장했었죠? 긴장감이 고조되는 부분에서 끝이 났는데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해가며 읽어보도록 합시다.”

창밖에는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경쾌하게 흘러가고 창문 너머 교과서를 읽는 아이의 목소리가 낭낭하게 흘러나온다. 다행히 아이들은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4만의 병선이 까마귀 떼처럼 바다를 덮고 부산을 향하여 쳐들어왔다. 왜적은 개미떼처럼 밀려들었고, 성에 기어올라 마침내 부산성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싸울 테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거든 길을 빌려 달라.”

“죽기는 쉬운 일로서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도다.”

긴장감 있는 대사가 연이어 나오며 아이들의 긴장감도 서서히 높아지는 순간!

“쌤! 팽이버섯 그거 나쁜 거예요.”

팽이버섯? 나와 아이들은 순간 이 엉뚱한 화제를 아무렇지 않게 큰소리로 꺼낸 근원지로 일제히 시선을 던진다. 아니나 다를까 경준이다. 칠판에는 반듯하게 써놓은 학습 목표와 함께 귀퉁이에 적힌 ‘오늘의 급식메뉴’가 보인다.‘팽이버섯전, 달걀볶음밥, 김치찌개, 찜닭, 떠먹는 요구르트’ 경준이에겐 지금 팽이버섯이 중요하단 말인가? 지금은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읽고 있고 긴박한 상황인데 팽이버섯이 무슨 상관이냐고, 수업에 관련 없는 딴소리는 하지 말라고 최대한 엄한 표정으로 지도하려는 순간! 경준이는 나보다 더 빠르게 하고 싶은 말을 속사포처럼 뱉어냈다.

“흰색 팽이버섯은 일본 종자라서 저희가 사먹을 때 마다 로열티를 내야한대요! 우리나라가 만든 건 만가닥 버섯이에요 이거 사먹어야 해요”

아이들은 곧이어 나의 입에서 나갈 불호령에 순간 일시정지가 되었고 그 몇 초의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실타래처럼 엉켰다가 풀렸다. 그 순간, 지금 하고 있는 소설 속 애국 이야기와 경준이의 팽이버섯 이야기가 아주 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직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경준이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이순신 장군이 용감하게 전장에 나가서 싸우는 것처럼 만가닥 버섯을 우리가 사먹으면 애국이라는 거지?”

아이들과 경준이는 눈이 똥그래져서 나를 쳐다보았고 얼음땡 놀이에서 내가 땡을 쳐준 것 마냥 아이들은 ‘만가닥 버섯이 뭐에요?’, ‘하얀 팽이버섯이 일본 거예요?’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교과서를 잠시 멈추고 경준이에게 만가닥 버섯과 흰색 팽이버섯에 대해 물어 보았다. 경준이는 팽이버섯의 색깔과 만가닥 버섯에 대해 자신이 아는 한 아주 열심히 대답을 해주었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 본 결과 국내에서 일본으로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채소가 흰색 팽이버섯 외에도 양파, 양배추, 브로콜리 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아이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경준이도 땀까지 흘리며 엄마와 마트에서 만가닥 버섯을 고르는 이야기를 한다. ‘이순신 장군은 팽이버섯 싫어하시겠다.’, ‘우리도 만가닥 버섯 사먹자’, ‘오늘 팽이버섯전 안 먹어도 돼요?’ 아이들의 질문이 생선처럼 팔딱거렸다.

“급식 시작 전 손 소독과 올바른 마스크 착용은 필수입니다. 손 씻기는.......”

“이야아~ 점심시간이다”

코로나 예방 안내 방송이 나가며 종이 쳤고 이날의 수업은 아이들 마음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만가닥 버섯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당연히 급식에 나온 팽이버섯전은 버리지 않고 골고루 먹기로 약속하며.

이후 임진록 수업은 8차시나 계속 되었다. 긴 호흡의 소설 수업에도 아이들은 지치지 않고 몰입하였다. 간간이 경준이는 졸음을 참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겸연쩍게 웃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드디어 소설 마지막 시간! 탁!탁!탁! 칠판에 닿는 분필 소리가 경쾌하다. 소설의 ‘의의’ 정리로 ‘영웅적 인물들의 활약상을 통해 애국심 고취’를 필기하는 순간,

“만가닥 버섯”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에 아이들은 깔깔 웃었고, 그 웃음꽃이 교실 속에서 만개했다. 중3 교과서에 임진록을 통해 달성해야할 목표가 ‘민족의식 고취’, ‘애국심 고취’라면 경준이 덕분에 100% 달성된 듯싶다.

“그래, 그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애국이 어떤 것들이 있나 생각해 볼까?”

6월 중순을 지나가며 하늘은 좀 더 맑아졌고 훅 다가온 여름의 열기에 교실의 열기도 한층 뜨거워졌다.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명언을 남긴 이순신 장군처럼 처절하고 근엄하게 애국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여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애국이라는 것을, 늘 골치아파하던 3학년 5반 꼬맹이들과의 수업을 통해 배운 6월이었다.

 

[수상소감] 제1회 충무공이순신호국문학상 수필(탐방기, 대상) - 김인선


사람마다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1회 충무공 이순신 호국 문학상은 강렬한 인상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는 공모전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많은 백일장에 참여하였던 소녀였지만 고등학생 때는 학업 공부, 대학생 때는 취업 공부, 직업을 가지고 난 후부터는 하루하루가 바쁜 현대인이 되어 글쓰기에 대한 욕망도 사라지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언 땅에 햇볕이 비추는 듯 마음 한편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자라났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제1회 충무공 이순신 호국 공모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큰 나무 아래에서 백일장을 써 내려가던 중학생이 되어 원고지가 아닌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순수히 이순신에 대해 생각하며, 애국에 대해 생각하며 흩어지는 다양한 생각들을 꿰매듯 한 글자 한 글자 타자를 누르던 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수상 소식을 접하게 된 바로 오늘은 제가 앞으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첫 공모전 당선이 된 제1회 충무공 이순신 호국 문학상을 주최하여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훌륭한 수필인이 되세요”라는 전화기 너머의 문장이 하루 종일 귀를 맴돌아 마음속에서 날아다니며 저를 설레게 합니다. 호국 문학상을 준비하던 순간, 그 시간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속 맴돌며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인생에 한줄기 햇빛이 되어준 공모전을 가슴속 깊이 기억하고 두고두고 꺼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놋쇠종 / 지영미  (0) 2022.02.25
식리(植履) / 김지희  (0) 2022.02.25
새, 다시 날다 / 윤기정  (0) 2022.02.24
혹 / 박월수  (0) 2022.02.24
씨, 내포하다 / 문경희  (0) 2022.02.23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