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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과 원문


창근(昌瑾)의 거울

 

갑(甲)보다 사흘 앞서
팔(八)과 근(斤)을 폈네
실 하나로 그물을 엮어서
마침내 옹(雍)에서 현(玄)을 부수었네
불길은 거친 언덕에 번져
풀을 태우고 시내를 마르게 하였네
숭(嵩)에서 산(山)이 달아나고
쇄(灑)에서 수(水)가 빠졌네
동(同)이 수레[車]에 앉아 있고
수레[車]를 세니 수레[車]가 없네
밝은 해가 위에 있고
유(由)에서 싹을 전부 뽑았네
근(謹)에서 언(言)을 줄이고
옥을 바탕으로 삼네
사람이 태양 아래에 서서
강한 사내를 얻은 것을 기뻐하네
인(仁)에서 인(人)이 돌아가고
사(詐)에서 언(言)이 빠졌네
관(管)이 관(官)을 맡지 않고
부(府) 깊숙한 곳에 거처하네
주(周)에서 용(用)을 버리고
오직 영(令)을 따를 뿐이지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일어섰으니
창근의 거울이 징조가 되었네
先甲三日 선갑삼일
八斤相宣 팔근상선
獨絲結罔 독사결망
遂破雍玄 수파옹현
火近荒原 화근황원
赭草渴川 자초갈천
遯于嵩山 둔우숭산
灑落水涯 쇄락수애
同坐輿中 동좌여중
數車無車 수거무거
離明在上 이명재상
盡拔由櫱 진발유얼
謹爾寡言 근이과언
玉成其質 옥성기질
人立日下 인립일하
喜得金夫 희득금부
仁人旣歸 인인기귀
詐言自輸 사언자수
管不攝官 관불섭관
深居府中 심거부중
周道用捨 주도용사
惟令之從 유령지종
新羅亡高麗興 신라망고려흥
昌瑾鏡作符命 창근경작부명

- 이광사(李匡師, 1705~1777), 『원교집선(圓嶠集選)』 1권, 동국악부(東國樂府), 「창근경(昌瑾鏡)」

 

 

해 설



이광사는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를 이룩한 조선 후기의 저명한 서예가이다. 이광사는 1755년(영조31)에 나주괘서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부령에서 7년, 다시 전라도 신지도로 유배지를 옮겨 모두 23년 동안 유배를 살다가 불우한 생을 마감하였다. 당세에 서예가로 이름 났지만 이광사는 정제두(鄭齊斗)에게 수학하여 양명학에도 밝았으며, 시문(詩文)에도 조예가 있었다.

위의 작품은 이광사가 1758년 부령 유배지에서 지은 「동국악부」 30수 가운데 「창근경(昌瑾鏡)」으로, 당나라 상인 왕창근(王昌瑾)이 저잣거리에서 어떤 노인한테 거울을 샀는데, 그 거울에 “상제(上帝)가 진한(辰韓)과 마한(馬韓)에 아들을 내려보내어 먼저 닭을 잡고 다음에 오리를 잡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는 사화(史話)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닭은 경주의 별칭인 계림(鷄林)을 가리키고 오리는 압록강을 가리키는데, 고려의 태조 왕건이 신라를 차지한 다음 압록강 유역을 수복한다는 예언이다.

이 사화(史話)를 알고 작품을 읽어보아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기가 힘들다. 무엇 때문일까? 작품 전체가 파자(破字)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퍼즐을 맞추듯 각 구(句)를 풀어나가다 보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마지막 두 구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1, 2구를 보자. 갑(甲)보다 사흘 앞선 간지는 신(辛)이고, 여기에 팔(八)과 근(斤)을 더하면 ‘신(新)’이 된다.
3, 4구를 보자. 실 하나는 사(糸), 그물은 망(网), 옹(雍)에서 현(玄)을 빼면 추(隹)인데, 세 글자를 합치면 ‘라(羅)’가 된다.
5, 6구를 보자. 황(荒)에서 풀[艹]과 시내[川]를 빼면 ‘망(亡)’이 된다.
7, 8구를 보자. 숭(嵩)에서 산(山)을 빼면 ‘고(高)’가 되고, 쇄(灑)에서 수(水)를 빼면 ‘려(麗)’가 된다.
9, 10구를 보자. 여(輿)에서 수레[車]를 빼고 동(同)을 넣으면 ‘흥(興)’이 된다.
11, 12구를 보자. 밝은 해는 일(日)이고, 유(由)에서 싹에 해당하는 곤(丨)을 빼면 역시 일(日)이 되는데, 둘을 합치면 ‘창(昌)’이 된다.
13, 14구를 보자. 근(謹)에서 언(言)을 빼고 옥(玉)을 더하면 ‘근(瑾)’이 된다.
15, 16구를 보자. 사람[人]이 태양[日] 아래에 섰다[立]는 것은 경(竟)이고, 여기에 금(金)을 더하면 ‘경(鏡)’이 된다.
17, 18구를 보자. 인(人)은 인(亻)과 같고, 사(詐)에서 언(言)을 빼면 사(乍)인데, 둘을 합치면 ‘작(作)’이 된다.
19, 20구를 보자. 관(管)에서 관(官)을 빼면 죽(竹)이고, 이를 부(付)와 합치면 ‘부(符)’가 된다.
21, 22구를 보자. 주(周)에서 용(用)을 빼면 구(口)이고, 이를 령(令)과 합하면 ‘명(命)’이 된다.

이광사의 노년기 삶은 유배와 고난으로 점철되었으며, 그 속에서 시를 창작하는 행위는 자신의 불우함을 달래는 중요한 일상이었다. 물론 그가 불우한 일상을 달래기 위한 여흥거리로 위와 같은 파자시를 지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서체를 거부하고 구불구불하고 삐뚤삐뚤한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완성했듯이 시에서도 남들과는 다른 시를 지으려 했던 그의 의지가 발현된 것이 아닌가 한다.

글쓴이 : 이승용(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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