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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산문시 / 양일섶

부흐고비 2022. 5. 13. 07:10

시계

우리 집에 다섯 개의 시계가 있다. 안방과 주방, 거실과 욕실에 하나씩 있고, 서랍장에는 손목시계가 잠자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시계 중 세계표준시에 맞게 가는 놈은 하나도 없다. 안방 시계는 10분, 나머지는 5분 빨리 가면서 서두르라고 재촉한다. 가끔 약이 다된 시계는 엄마 심부름으로 옆집에 돈을 빌리러 가는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며 느릿느릿 움직인다. 늦거나 멈춘 게 있어야 정상으로 가는 시계의 고마움을 안다. 세상을 움직이는 시계도 약이 떨어져서 좀 천천히 가거나 한 번쯤 정지했으면 좋겠다. 시계가 쉬면 우리는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

핸들

핸들을 잡으면 햇살에 반짝거리는 강을 따라 달리던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자잘한 섬들이 뒤꿈치를 들고 손짓하는 모습도 보인다. 밥을 먹고 나왔는데 차창 밖 음식점에서 시래기된장국 다슬기수제비 멍게비빔밥 어탕국수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아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인심 좋은 시골 민박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잘 계시는지 궁금하다. 젊음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외딴섬에 먼저 가 즐기고 있는지 그 흔한 카톡도 없다. 너와 나, 우리가 산과 바다를 작은 소주잔에 담아 한입에 털어 넣었던 그 날이 언제였던가. 기억도 수명이 다된 형광등처럼 깜박거린다. 마음은 옛길을 더듬어 가는데 고집스러운 핸들은 왜 자꾸 가던 길로만 방향을 잡는지 모르겠다.

슬리퍼

정장을 입은 신사가 구두를 신고 간다. 추리닝을 입은 백수는 슬리퍼를 끌고 간다. 같은 신발이지만 구두는 발의 일부분이 되어 함께 움직이고 슬리퍼는 발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할딱거리며 질질 딸려 간다. 슬리퍼는 실내에 침입한 파리나 벌, 바퀴벌레 같은 생물체를 때려잡는 퇴치기 역할도 한다. 비록 슬리퍼가 태생적으로 미천할지라도 판검사를 꿈꾸는 고시생에게는 외출용 자가용이고, 아파트 입주를 꿈꾸는 산동네 아주머니에게는 유리 구두와 같은 희망이다.

슬리퍼는 막 신기에 편해서 좋다. 편리성이 떨어지면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버린다. 한때 막역지우莫逆之友라며 죽을 만큼 좋아했던 친구들은 소식불통이다. 우리는 왜 편하고 좋을 때만 친구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슬리퍼는 한여름 피서철이 지나면 백사장이나 강가에 한쪽만 남겨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 남든 먼저 떠난 짝을 그리는 외로운 연인이다.

녹즙기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본다. 녹즙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간다. 못난 남편을 위해 밀감과 사과를 함께 갈아 주스를 만들어주는 아내 옆에서 아양이라도 떨어야 한다. “이야, 새콤달콤한 게 시원하고 맛있네. 고마워요.”라고 말하면 아내는 빙긋이 웃는다.

아내의 수고와 정성도 있지만 간단하고 편리하게 과즙을 만들어주는 녹즙기 덕분이다. 믹서기는 뭐든지 뒤섞어 혼합하여 가루를 내면 임무가 끝난다. 녹즙기는 들어온 재료를 분쇄하여 과육과 과즙을 분리해서 따로 배출한다. 어떤 재료가 들어오던 필요와 불필요를 구분해 줄 것 같다. 나의 머릿속 생각을 녹즙기에 넣으면 쓸데없는 잡념을 추출해 줄지도 모르겠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마음속에 녹즙기가 한 대씩 들어있으면 국민이 원하는 언행만 할 수 있지 않을까.

6905

나는 울산의 큰 공장에서 태어나 보관소에 며칠 머물다가 부산으로 팔려왔다. 새 주인은 나에게 ‘6905’라는 명찰을 붙여주었고, 내 머리맡에 막걸리와 명태를 차려놓고 무사고 고사를 지냈다. 이제 곧 열다섯 번째 생일이 다가온다.

주인을 따라 거문도, 흑산도와 같은 섬을 비롯하여 최전방 철책에서 땅끝마을까지 전국을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녔다. 무리하게 몸을 쓰다가 탈이나 병원에도 몇 번 갔었다. 그래도 섬에 갈 때, 커다란 유람선을 타고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그때가 내 인생의 최고 황금기였다.

지금 주인은 코로나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집콕만 하고, 나는 주차장만 지키고 있다. 열흘 넘게 철재 구조물처럼 꼼작 않고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잠도 자지 않고 밤새 달리던 시간,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그립다.

주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내가 남아 있을지, 내가 먼저 폐차장으로 갈지 모르겠다. 언젠가 나의 이름표 ‘6905’가 찌그러지면서 몸뚱이는 고철로 분해될 것이다. 아무리 화려했던 삶도 그 끝은 허무하다. 마지막으로 주인과 함께 유람선을 타고 섬으로 가서 바닷바람이라도 한번 쐬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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