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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엇갈림 / 김창수

부흐고비 2022. 6. 13. 07:30

기억에서 지워진 이름인 줄 알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순간 멍해졌다. 억새만 서걱대던 마음 밭에 금세 봄풀이 산들댄다. 무서운 게 정이라 했던가. 애증도, 희비도 때로는 꼬이고 엇갈리는 게 인생사인가 보다.

어린 시절 네댓 살 위의 누나를 둔 친구가 둘 있었다. 두 처녀는 닮은 데가 많았다. 같은 또래로 맏딸에다 여고 졸업 후 가사를 돕기 위해 상급 학교 진학도 포기했다. 서로 라이벌 의식도 강했다. 소처럼 일했고, 동생들 공부도 가르쳤다. 친구가 부러웠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란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척스러운 그들도 어느새 혼기가 찼다. 번듯한 신랑감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어느 날, 중매쟁이가 A 처녀 집을 찾아 마을로 들어섰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B 처녀 집으로 갔고, 혼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A도 질세라 곧장 짝을 찾았다. 동네 어귀 큰 느티나무 그늘에서 신혼 초 여름휴가 온 그들 부부를 가까이서 서너 번 목격했다. 신랑은 약한 체구에다 눈이 움푹 들어가고 안색이 창백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언젠가 내가 일터를 옮겨 갔더니, 그곳에서 A가 힘든 일을 하고 있었다. 혼자서 가정을 꾸려가느라 얼굴 가꿀 시간 따위는 없는 듯했다. 그와 달리 B는 남편과 지금도 잘살고 있다. 중매쟁이에 의해 운명이 엇갈렸다.

얼마 전 C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장남이 결혼을 기피해서, 둘째 아들을 먼저 보낸다고 했다. 혼주 부부가 나란히 서서 하객을 맞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녀가 흰 장갑 낀 손을 내게 내밀었다. 괜히 옆에 서 있는 사람 눈치를 본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일찌감치 피로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폐백을 끝낸 혼주 부부가 우리 일행에게 인사를 하고 갔다. 혼주 역할을 한 사람은 시동생이라고 옆자리의 친구가 귀띔해준다. 나는 짐짓 놀랐다.

그동안 그녀는 좀처럼 내게는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어렴풋하게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언젠가 그녀의 산행 모임 차 안에서였다. 남편 사업은 잘되느냐고 스치듯 물었더니, 갑자기 사레들린 것처럼 캑캑거리며 손사래를 쳤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의 남편은 여태까지의 인생행로를 버리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혼자 길을 떠났다고 했다. ‘무책임한 사람이네….’ 하지만 부부간의 깊은 사연을 남들은 모르는 일. 홀몸으로 시어머니 모시고 아들 둘 키우면서 살아내기 위해 대구에 정착했다. 시어머니의 돈줄로 사업을 벌였다가 돈만 날렸다.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녀의 뒷모습에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소낙비가 대지를 한차례 식혀주고 간 한여름 어느 날. 그녀가 만나자고 했다. 우리를 위해 친구 둘도 함께했다. 이리저리 쏘다니다 넷이서 원두막에 올라 수박을 먹었다.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을 때 그녀가 그걸 내 앞으로 쓱 밀면서 “이거 먹으면 아들 낳는다.”라고 했다. 그 말에 내 얼굴이 수박 속처럼 빨개졌다. 해거름에 그녀의 집에 들렀다가 헤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무슨 영문인지 그 후부터 그녀에게서 때아닌 서릿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돌변한 그녀의 속마음이 궁금했으나, 입술만 깨물었다. 그때의 싸늘함은 한동안 명치끝에 아픔으로 남았다. 그 상처가 꾸덕꾸덕 마르다가 입대하면서 군색하게나마 아물었다. 하지만 군 생활 중 가끔 상흔이 덧나기도 했다. 그것은 한여름 한줄기 소나기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서울에서 직장 동료와 인연을 맺었고, 나는 서울서 내려온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내 책상 위 전화통이 방정맞게 울어댔다. 그녀였다. 얼굴 한번 보고 싶다기에 얼떨결에 그러자고 해놓고도 망설여졌다. 두류네거리 근처 커피숍에서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낯설었다. 그건 이십여 년이란 세월의 틈새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서로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치는데 한나절이 부족할 정도였다. 망설이다가 가슴의 묵은 응어리를 꺼냈다. 그때 한순간 매몰찼던 것은 빠른 속도감에 멀미가 났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성질 참 고약한 데가 있었구나.”라고 쏘아붙였다. 그 후로 내가 좀 거친 말을 해도 그녀는 눙치며 웃어넘겼다.

말문을 튼 후 이것저것 물어왔다. 물려받은 시 외곽 토지의 도시계획 집행 시기와 권리행사에 관한 것을 알고 싶어 했다. 남편 놔두고 왜 나한테 묻는지가 의아하기도 했다. 친정어머니가 별세했다면서 목멘 소리로 전화도 했다. 가끔 내 일터 근처에서 차도 마시고 갔다. 세월에 곰삭은 인연, 정념이야 있었겠냐만 잠시 마음 둘 데가 없어서 그랬을까. 돌아보니, 그때 그녀는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건성으로 대했던 내게 야속한 생각을 품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산행 모임에 몇 번 참석했다. 친구 셋과 늘 같이 다녔다. 그들에게 나는 ‘그때 그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과 친숙해지자 한번은 내가 농담을 던졌다. “헤어진 첫사랑이 잘 살면 배가 아프고, 못 살면 가슴 아프고, 아직도 같이 살면 머리가 아프다.”라는 말에 그녀가 어디가 아프냐고 내게 되묻는다. 나는 겸연쩍게 웃고 말았다. 내가 산행에 참석하는 날은 좌석도 미리 챙겨주고, 먹을 것도 준비해왔다.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우리 앞에 놓인 여러 길 중 어느 길이 최선인지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선지 훗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해 아쉬움은 남는 것 같다. 엇갈린 틈새로 저녁노을이 얼비쳐온다. 지난 일은 마음속 갈피에 추억으로 쟁여두고, 노을처럼 곱게 물들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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