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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아들의 전화 / 박범수

by 부흐고비 2022. 6. 15.

회의실 분위기가 무거웠다. 떨어지는 매출에 대처하기 위해 긴급히 마련된 자리였다.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막내아들의 전화였다. 평소 전화하는 일이 드물어서 다급하게 느껴졌다. 회의실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 최근에 취직한 곳에서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며 흥분하고 있었다. 밀린 급여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당황스러움과 자괴감으로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치미는 화를 누르고 회의가 끝나면 전화하겠다고 했다.

막내는 자기주장이 강했다. 대학 전공학과 선택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했다. 종교학이다. 그때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어떤 대학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전공은 평생을 가지고 가는 것이니 잘 판단하라고 했다. 종교학을 전공해서는 신자유주의가 큰 물줄기를 이루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가 고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내는 자신이 택한 길로 갔다. 신학을 공부하고 먼 후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그렇게 한다고 주장했다.

막내는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졸업반이 되어서야 자신이 선택한 길을 후회했다. 조심스럽게 진로를 변경해야겠다고 말했고 나는 출발할 때의 마음을 지키라고 했다. 막내는 전처럼 제 뜻대로 했다. 그리고 사회로 나와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내고 다녔다. 나는 지켜만 보고 있었다.

첫 직장은 가족이 운영하는 보험대리점이었다. 사장이 남편이고 부인이 부사장, 딸이 부장인 조그만 사무실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다. 그만둔 날 무거운 목소리로 죄스러운 듯 전화를 했다. 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사회 첫 도전의 실패를 듣기만 했다.

두 번째로 얻은 직장은 컴퓨터 조립 회사였다. 공장에 취직했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신을 전도하겠다더니 공장 근로자가 된 깃이다. 조립라인에 서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부렸지만 몇 달 후 퇴출당했다. 나는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다고 얘기해 주었다.

막내를 지켜보는 심정이 무척이나 답답하고 복잡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막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았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들을 생각해도 막내는 채용 대상이 되지 않았다. 가파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 피와 땀을 흘리며 스스로 길을 찾도록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세 번째 직장은 출판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막내는 그 직장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사장이 저와 종교가 같은 점잖은 사람이며 저자들을 만나 섭외하는 일을 보조한다고 즐겁게 얘기했다. 어느 날은 사회적 기업을 소개하는 행사에 그 회사가 참가한다고 했다. 방송사에서 취재한다는데 제 얼굴도 나올 것이라며 천진하게 말했다.

긴 회의가 끝났다.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작은 회사를 꾸려가려면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대표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막내가 다닌 출판사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직원을 해고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장자로서 사회의 첫발을 내디딘 젊은이를 그렇게 내친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순간, 옛날 노조활동을 할 때의 충동이 일었다.

막내는 나로부터 위로받고, 무시당하고 참담하게 쫓겨난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주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아버지가 생각났다. 전교조 간부 활동을 한 아버지는 중학교에 다닐 때 해직되었다. 노동력을 빼앗긴 아버지는 무력한 가장일 뿐이었다. 동경유학생이었던 아버지의 논문과 서적들은 더 이상 자랑이 되지 못했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신문배달을 했다. 신문을 돌리고 지쳐서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는 짧게 얘기했다. 부엌에 밥이 있다. 먹고 쉬어라.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학교도 못 가고 신문을 돌리며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아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 모습이 싫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아버지의 괴로움을 알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그때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신문을 돌리고 늦게 오는 날이면 조바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셨다고. 아버지가 보기에 그 일은 나를 위해 내가 극복해야 할 나의 일이었을 것이다.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마자 막내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말을 꾹꾹 씹어가면서 했다. 너는 열심히 일했다. 그랬음에도 그 사장이 무례하게 행동했다면 그것은 너의 몫이다. 너는 너의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신뢰하지 않았느냐. 네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나는 물불 안 가리고 너에게 달려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일은 그 정도는 아니다.

가슴이 아팠다. 막내는 조그맣게 네, 라고만 대답했다. 나는 마지막 말을 전화를 끊었다.

“너는 이 땅에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너의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는지 잘 판단하고 행동해라. 그리고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노을의 자국이 핏빛처럼 얼룩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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