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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핏줄 / 황선유

by 부흐고비 2022. 6. 15.

갓 태어난 손녀는 첫 눈에 제 어미를 닮았다. 며칠 후에는 반드러운 얼굴선이며 아이한테서도 보이는 함초롬한 분위기가 제 외할머니까지 닮아있다. 외탁을 한 것이다. 솔직히 나는 흡족했다.

딱히 밉단 말을 들은 기억은 없지만 처진 눈, 툭진 볼 살, 짱구와 곱슬머리의 내 얼굴이 내 맘에 안 들었다. 거기다가 쓸데없이 튼튼한 다리통도 영 못마땅했다. 큰아들이 그만 나를 닮았다. 예닐곱 살이었나. 아들을 목욕시키던 남편이 너 꼭 엄마 닮았다고 하니 “아빠, 엄마 목욕시켜 봤어요?” 하더란다. 막연히 나와는 다른 생김새에 호감이 가곤 했다. 당연히 외까풀의 가늘가늘 초강초강한 며느리가 내 맘에 들었다.

못 본 사이 훌쩍 자란 손녀는 낯이 선 할머니 앞에서 잠시 쭈뼛거렸으나 이내 표정을 풀고 안겨왔다. 살빛 뽀얀 아이가 품에 아름지자 온기가 번져 훔훔하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아기 냄새 젖 냄새에 숨조차 가빠온다. 갓맑은 손녀의 눈과 마주쳤다. 툭, 심장이 제자리 뜀뛰기를 하더니 바삐 피돌기를 한다. 별안간, 뜬금없는 짜안함이 함께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번진다. 딱 제 아비 눈이 저랬다. 눈꼬리 처진 짝짝이 눈 안의 찰랑한 장난기까지. 눈망울은 하도 똘망하여 큰 눈이 더 짝짝이로 보였다. 누가 마음에 두어 한 말은 아니라도 ‘너 짝짝이 눈이네.’ 아들은 그 말이 싫었던 모양이다. 제발 한쪽 눈 쌍꺼풀을 풀어 달라 떼를 쓰곤 했다. 여기쯤에서 들먹이자면, 사실 그 나이 때의 내 눈도 짝짝이였다.

유년의 나는 예쁘다는 말을 제법 들었음에도 외모에 관한 몇몇 일화는 방금 전인 양 생생하다. 짱구와 곱슬머리 그리고 짝짝이 눈 때문이었다. 언니들은 내 머리를 빗겨줄 때마다 뒤통수를 쥐어박았다. 가르마가 반듯하지도 않고 머리를 묶어도 태가 안 난다는 것이다. 여자애는 꼭뒤가 납작해야 쌍갈래 머리가 예쁜 시절이었다. “튀기같이 생겼네.” 심부름이었던지 한날 교무실에 간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던 선생님의 이름까지 생각난다. 오빠한테서 튀기의 말뜻을 들은 엄마는 당장 달려가서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선생이 애한테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 행여 그 선생님을 또 마주칠까 겁이 났다. 내 짝짝이 눈은 중학교 흑백 사진이 마지막 기록이다. 막 멋을 내기 시작한 언니가 짝짝이 눈의 외까풀에다 스카치테이프를 오려 붙여서 쌍꺼풀을 만들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붙이든지 아예 붙여서 재우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는 테이프를 붙이지 않아도 쌍꺼풀이 되었다. 거짓말처럼 그때부터 내 눈은 죽 쌍꺼풀진 눈이다.

-얽둑배기 왼손잡이인 허생원은 단 한 번의 첫 일을 잊을 수는 없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괴이한 인연이었다.

어머니는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집에서 쫓겨났죠.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좀 더 업혔으면 하였다.

오랫동안 어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M은 어린애를 왼편 팔로 가까이 옮겨 붙안으면서 오른 팔로 제 양말을 벗었습니다.

내 발가락 보게.

내 발가락은 남의 발가락과 달라서 가운데 발가락이 그중 길어.

쉽지 않은 발가락이야. 근데….

M은 강보를 들치고 어린애의 발을 가만히 꺼내어 놓았습니다.

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

새삼스럽게 가즈러운 척 핏줄을 논하기야 하겠느냐마는 핏줄이란 때로 그렇게 절박한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이 자신의 ‘아이 하나 후릴 수 없는 왼손잡이’를 닮은 동이에게서 핏줄을 느끼고는 ‘걸음도 해깝았’던 것처럼. 《발가락이 닮았다》의 M이 의사 앞에서 양말을 벗어 기어코 발가락 닮은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처럼. 내가 손녀의 짝짝이 눈과 마주하는 순간의 뜬금없는 짜안함도 핏줄에 대한 또 한 가지 절박한 공감이다. 그 공감이 하필이면 짜안함이었는지.

최근에 류근 시인의 《상처적 체질》시집을 받아들고는 전율했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이라며 나의 성정에다 단 한 줄로 정의를 내려 준 시인의 말. 아주 오랫동안 찾고 있던 마침한 말. 내 아들과 내 손녀의 짝짝이 눈에서 나와 잇대진 상처적 체질이 얼른거렸던 것이다. 덧나다 아물다 옹이라도 질까 그런 상처가 아른거렸던 탓이다. 실체도 없는 상처와 마주하는 짜안함이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번졌던 까닭이다. 이렇듯 감당할 수 없는 짜안함이야말로 핏줄에 대한 나의 은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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