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읽기

달이 몰락하고 있네 / 김은옥

by 부흐고비 2022. 6. 28.

봄빛이 고향집 화단에 피어있던 산매를 보내왔다.

연분홍빛 볼을 청 초히 숙이고서 부끄러운 듯 슬픈 듯 흔들리던 매화. 겹고광나무라고도 하고 산옥매라고도 한다는데 어쨌거나 나는 고향집 산매화가 참 좋았다.

요즘은 때를 혼동한 진달래 철쭉 벚꽃 산수유 튤립 장미 등이 시도 때도 없이 앞 다투어 피어난다.

달력이 제 구실을 못한다는 말을 듣다가 김수영 시인의 팽이(<달나라의 장난> 中)가 떠올랐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는 시 구절.

몇 천 년 된 달력. 그 몇 천 년 사이 달과 지구 궤도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꿈과 희망과 인류문명을 가능케 했던 달이 조금씩 조금씩 지구로부터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일 년에 몇 센티씩 궤도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것. 달력만으로 가능했던 사리측정도 이젠 맞지 않다. 제부도만 해도 그렇다. 물때가 조금만 달라지거나 틀려도 십분 이십분 차이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어서 어민들은 예보에 의지하며 굉장히 고민스러워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달은 팔천만년 정도 후면 아예 지구에서 떠나간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의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달이 지구로부터 멀어지면 지구에는 엄청난 재앙이 몰려오고 생태계 파괴로 생물은 멸종될 것이다.

올해 정월 대보름달을 보려고 기다렸다가 결국 포기했다. 예전엔 대보름이 만월이었는데 이제는 달력에 적힌 대보름날보다 하루 정도 늦게 차오른다. 빙산이 녹으면서 대류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달이 몰락하고 있네'는 노랫말일 뿐이다. 왜 달이 몰락하고 있을까. 어쩌면 진짜 이유는 우주탐사선을 보내고 화성을 찾아가는 인간의 오만함이 마음으로부터 달을 밀어내는 게 더 클지도 모른다.

끈을 매달아 그 끈을 잡고 던져서 돌릴 수 있는 팽이는 자꾸 죽는다. 지구가 달의 끈일까. 방아 찧는 옥토끼가 기억에 가물거린다. 별 하나 나하나 달달 무슨 달 쟁반 같은 둥근 달이 늙어간다.

지구에서 쏘아대는 인공 빛으로 별빛도 눈 멀어버렸다. 스산하게 변해가는 지구에서 도망쳐가는 달 눈이 팽팽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죽는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착 보살 / 김지희  (0) 2022.06.29
꽃고무신 / 김옥춘  (0) 2022.06.28
말은 참새가 아니다 / 지홍석  (0) 2022.06.27
나비 이야기 / 서정범  (0) 2022.06.27
남의 아재 / 서병호  (0) 2022.06.24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