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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꽃고무신 / 김옥춘

부흐고비 2022. 6. 28. 07:44

신발은 두 짝이 있어야 한다. 한 짝은 외롭다. 부부도 함께 있어야 아름답다. 헌신짝 버리듯 헤어지는 부모들의 결정으로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은 많이 아프다.

아이가 울고 있었다. 사흘 전 장날 엄마가 사다주신 리본 달린 꽃고무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다 돌아간 복도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온 선생님은 딱했는지 학년마다 교실 앞 복도에 놓여있는 신발장을 같이 돌며 찾아보았다. 꽃고무신은 보이지 않고 닳고 닳아 찢어진 검정고무신 한 켤레가 남아 있었다.

새 고무신을 신으면 뒤꿈치를 깨물어서 살갗이 부풀고 벗겨져서 피가 났다. 그래도 참고 신었다. 밴드나 반창고도 귀했던 시절이었다. 뒤꿈치에 헝겊쪼가리나 종이를 접어서 대고 절뚝거리면서 걷거나, 신발 뒤를 꺾어 신고 며칠 다니다 보면 딱지가 앉았다. 새 신과 뒤꿈치의 적응 과정을 한바탕 치르고 나면 그제야 발이 편해졌다. 그런데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신발이 없어졌다. 바닥에 구멍이 뚫어지고 발가락이 쑥 나오는 검정고무신을 벗어두고 새 신을 신고 간 것이다. 꽃신을 사 오던 날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 신이 없어지다니. 그날 엄마에게 꾸중 들을 생각에 지레 겁먹고 엉엉 울며 집에 들어갔다. 찢어지고 구멍 난 검정고무신을 본 엄마는 어이가 없어서인지 말을 못 했다. 전에도 한번 잃어버린 경험으로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다음 장날 다시 신을 사 오셨다. 그리고 불에 달군 부젓가락으로 신발 바닥에 표시를 해주었다.

장에 갈 때 엄마는 손 뼘으로 신발바닥 길이를 몇 번씩 재어보곤 했지만 오래오래 신으라고 언제나 한 치수 큰 신을 사 왔다. 하교 길에 친구들과 산길을 지날 때 짓궂은 사내애들이 뒤에서 돌멩이를 던지면서 쫓아오면, 도망가다 신발이 벗겨지기 일쑤였다. 왜 도망가는지도 모르고 뛰어가다가 신발을 찾으려고 돌아다보면, 녀석은 고무신을 힘껏 던져주며 뭐라고 한마디 하고는 돌아갔다. 수십 년 지나 동창회를 하던 날,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며 신발 버리고 도망가던 가시나가 누구냐고, 늙어가는 사내가 말했는데 모른척했다. 여자 가슴속에는 부끄럼 타는 소녀가 아직도 남아 있었던가보다.

한 여자가 웃고 있다. ‘텐 블러썸’ 함께 여행하려고 모인 꽃 중년들이다. 모든 게 제각각이다. 호칭은 나이순으로 1번부터 10번까지 정해서 편하게 부르기로 했다. 여자는 2번이었다. 재작년 여름 평창에 놀러갔을 때였다. 3번이 신발 한 켤레를 내어놓으면서 발에 잘 맞고 모양이 예쁜 사람에게 선물하겠노라 했다. 여러 개의 꽃송이를 수놓은 검정 고무신, 그것은 작은 꽃밭이었다. 여자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키는 작지만 발은 도톰해서 신발은 한 치수 크게 신었다. 꽃 중년들은 신데렐라를 외치며 화사한 꽃송이를 수놓은 검정고무신에 발을 넣어보았다. 내심 선택받기를 바라면서…. 심사는 신발 주인 3번이 했다. 모델인양 꽃신을 신고 갖은 포즈로 한 바퀴씩 돌며 꽃고무신 패션쇼를 했다. 누구는 발이 크거나 작아서, 혹 길이는 얼추 맞아도 발볼이 넓거나 좁았다. 여자는 아예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맨 나중에 설마 하면서 발을 넣어보았다. 그런데 맞춘 듯이 꼭 맞았다. 여자는 그날의 신데렐라였다. 신발이 잘 맞기도 했지만 발이 통통하여 신은 모양이 가장 예쁘다는 심사평이 있었다. 다들 인정했다. 그래서 검정고무신에 동글동글한 꽃들이 피어있는 꽃신의 주인은 여자가 되었다.

꽃신을 신고 시장에 갔다. 사람들 눈길이 머물다 지나간다. 그런데 뒤꿈치가 아팠다. 고무신은 여전하다. 발이 새 고무신에 적응하려면 얼마간의 아픔을 견디어야 한다. 그렇게 상처를 보듬고 지내다보면 새 신은 발과 하나 되어 맘대로 쏘다녀도 아프지 않게 된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여자는 깨물린 뒤꿈치에 밴드를 붙이고 마당에 나갈 때만 잠깐씩 신었다. 며칠 후에는 시장에 다녀와도 아무렇지 않고 편했다.

아프다. 오랜만에 고무신에 뒤꿈치를 깨물리고 나서, 여자는 아들 친구가 생각났다. 까까머리 학생 때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아들 친구는 얼마 전 이혼을 했다. 아들과 각별한 사이였던지라 가끔 물어보면, 아들 낳고 딸 낳고 지지고 볶으면서도 잘살고 있다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 둘은 부모님에게 맡기고 각자 떠났다고 한다. 엄마 아빠 없이 지낼 어린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부부는 서로 깨물기도 하고 할퀴어 상처가 나기도 한다. 처음엔 발에 잘 맞는 신발처럼 마음에 쏙 들어서 서로 선택했는데, 신다 보면 발에 상처가 생기듯이 살다보면 부부도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신 잘못이다. 발 잘못이다 하고 따지기보다는 아프면 발에 약도 바르고 신도 쉬게 두었다가 다시 신으면 신과 발은 하나인 듯 잘 맞아서 몸의 일부인양 편해진다. 부부의 경우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다쳤을 때, 처음 만났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기다림의 시간을 갖게 되면 다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될 수도 있으련만….

꽃신을 현관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텐 블러썸’ 친구의 깜짝쇼는 여자를 웃게 했지만, 부모의 헤어짐으로 아픈 아이들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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