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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놀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한다. 나는 일이라면 딱 질색이다. 내가 일을 싫어하는 까닭은 분명하고도 정당하다.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부지런을 떨수록 나는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져서, 낯선 사물이 되어간다. 일은 내 몸을 나로부터 분리시킨다. 일이 몸에서 겉돌아서 일 따로 몸 따로가 될 때, 나는 불안하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소회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나는 이제 아무데도 붙여주는 곳이 없고 기웃거릴 곳도 없어서 혼자 들어앉아 있다. 또 막 무는 개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대문 밖에 나가지 못한다. 요즘 나의 일이란 하루에 그저 두어 줄씩 작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때때로 그나마도 하고 싶지가 않다.
글이란 아무리 세상없이 잘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몇 줄이라 하더라도 그 물적 바탕은 훈민정음 스물네 글자를 이리저리 꿰어 맞추고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쓸 때 오른손엔 연필, 왼손엔 지우개를 쥔 내 몸은 부지할 곳이 없고 숨 쉴 공기가 모자란다. 다 큰 사내가 어찌 연필과 지우개만으로 그 몸의 일을 넉넉히 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는 도저히 못한다.
지난봄에는 글쓰기를 아예 작파하고 놀았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집을 짓는 공사장이 있다. 마흔 평짜리 목조 주택을 짓는데 설계에 허세가 없었다. 낮고 순한 집이었다. 나는 그 공사장에 가서 목수들과 안면을 트고 그들이 하는 일을 들여다보았다. 젊은 목수들이었다. 목수들은 나를 귀찮아하면서 위험하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다. 목수들은 허리춤에 여러 가지 연장을 차고 있었다. 젊은 목수들의 연장은 아름다웠고, 그들의 망치질이며 톱질과 대패질은 행복해 보였다. 세상의 재료들을 재고, 자르고, 깎고, 다듬어서 일으켜 세우고 고정시키는 자들의 기쁨으로 그들의 근육은 꿈틀거렸고, 날이 선 연장들은 햇빛에 빛났다. 아아, 연필과 지우개는 잊혀져야 마땅하리라!
공사장 옆 나무 그늘에서 목수들이 먹다 남긴 소주를 마셨는데, 내 마음은 슬픔과 기쁨이 뒤엉켜서 기뻤다. 전기톱이 나무속을 파고들어가는 소리와 망치로 못대가리를 때리는 소리를 듣기에 편하다. 소음이 어째서 편안하고 아름답게 들리는가. 그 의문이 또 나를 들볶았다. 아마도 그 소음은 인간의 근육의 힘이 이 세계의 재료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듣기에 편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음을 편안해하는 내 마음은 나 자신의 결핍이고 불행일 것이다.
나는 목수들이 잘라내 버린 그 나무에 망치질을 했다. 나무통을 짜서 거기에 옥수수를 기르기로 했다. 못 박기는 쉽지 않았다. 못은 힘의 크기로 박는 것이 아니라, 힘의 각도로 박는다는 이치를 나는 알았다. 못 대가리를 수직으로 정확히 때리지 않으면, 힘이 클수록 못은 휘어져서 일을 망친다. 수많은 못이 휘어진 뒤에, 나무통 몇 개를 겨우 만들었다.
거기에 심은 옥수수가 자라서 잎이 제법 늘어졌다. 나는 옥수수 먹기보다도 옥수수나무 쳐다보기를 더 좋아한다. 옥수수 잎은 난초처럼 깔끔하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거칠고 싱싱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옥수수 잎이 거침없이 뻗어나가고, 힘찬 각도를 이루며 꺾이고 비틀리고 휘어진 모습은 언제나 나를 신나게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바람이 스칠 때, 잎들이 부대끼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늘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사랑을 꿈꾸게 한다. 이런 소리는 옥수수밭에 가야만 들을 수 있지만, 나무통에 심은 한 줄기의 옥수수에서도 그 바람 소리는 들릴락 말락 하게 들린다. 옥수수가 좀 자라자 다시 연필과 지우개를 쥘 수밖에 없는 내 몸의 조바심은 겨우 진정되었다.
공사 중인 집의 처마 끝에 매달려 못질을 하는 젊은 목수는 그 아름다움으로 나를 주눅 들게 한다. 그러나 누구의 삶인들 고달프고 스산하지 않겠는가. 나무통이 좁아서 뿌리가 비어져 나온 옥수수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새로운 슬픔으로 지나간 슬픔을 위로한다. 옥수수 잎에서, 먼 바람 소리가 들린다. 놀다 보니 봄은 다 갔고, 내 사랑하는 젊은 목수들은 집을 다 짓고 어디론지 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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