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공원을 벗어났을 즈음 낯익은 팝송이 들렸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선율이 차량의 소음을 물리치며 울려퍼졌다. “Knowing you don’t need me~”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였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번안되어 한 시절 어디서나 들려오던 곡이었다. 나는 이끌리듯 소리를 찾아 나섰다. 사거리에 있는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한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추억이 되어버린 가수의 노래를 자동차와 사람이 쉴 새 없이 지나는 도심 한가운데서 듣게 되다니. 괜한 설렘으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호흡을 모으는지 상체를 앞으로 살짝 구부리고 있었다. 저녁 햇살이 남자의 어깨로, 보도블럭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파킨스병 20년차 약 미복용시 전신근육마비 기초생활대상자이나 생계비 중지 이유-사..
눈 속에 잡풀더미를 그려낸 화가가 있었다. 그는 거기에 얽혀 있는 다양한 선과 독특한 조형미에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표현해 봐’ 하고 속삭이는 풀의 유혹 앞에 주저앉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화가의 말에 야릇한 질투심을 느꼈다. 시골 어디에나 펼쳐져 있는 풀더미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그 심미안이 부러웠다. 글을 쓰는 일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에서 혹은 사물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글의 생명이라 하지 않는가. 화가의 풀더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리저리 엉켜있는 그것들에게서는 시린 바람과 무표정한 흙의 군상, 부질없이 흩날리는 눈발이 보일 뿐 화가가 느꼈던 유혹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잔치가 끝난 뒤의 어수선함이랄까. 을씨년스러움 같은 것이 느껴지기만 했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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