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실 시인 1975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서울시립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다수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작가로 활동했고, 2010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는 잠깐 설웁다』와 산문 『내일 쓰는 일기』,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 등이 있다. 제8회 김구용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저녁의 호명 / 허은실 제 식구를 부르는 새들/ 부리가 숲을 들어올린다// 저녁빛 속을 떠도는 허밍/ 다녀왔니/ 뒷목에 와 닿는 숨결/ 돌아보면/ 다시 너는 없고/ 주저앉아 뼈를 추리는 사람처럼/ 나는 획을 모은다//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되는가/ 속으로만 부르는 것들은// 네 이름이 내 심장을 죄어온다// 소풍이라 말하려 했는데/ 슬픔이 와 있다// 도요라든가 저어라든가..
처가가 농사짓는 시골이다. 몇 년 전까지 일 년에 예닐곱 번은 사역병으로 불리어 다녔다. 도시에서 자라고 생활하던 나는 농사철이 다가오면 입대를 기다리는 젊은이처럼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맏사위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농사일을 거들지만, 일하는 요령이 없으니 힘은 힘대로 들고 결과도 시원찮아 눈치까지 보였다. 일을 잘하는 처남들과 동서를 보면 부럽기만 했다. 모내기와 타작, 지게질과 도리깨질, 삽질에서 곡괭이질까지 농사일을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죽도록 일하고 돌아오면서 너무 힘든 나머지 아내에게 화를 내며 언짢은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아내는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했지만, 나는 ‘왜 하필 시골 출신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이 고생이야.’라고 생각하며, ‘애들은 시골에 본가가 있는 처자하고는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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