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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묵정밭의 봄 / 양일섶

by 부흐고비 2022. 6. 20.

처가가 농사짓는 시골이다. 몇 년 전까지 일 년에 예닐곱 번은 사역병으로 불리어 다녔다. 도시에서 자라고 생활하던 나는 농사철이 다가오면 입대를 기다리는 젊은이처럼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맏사위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농사일을 거들지만, 일하는 요령이 없으니 힘은 힘대로 들고 결과도 시원찮아 눈치까지 보였다. 일을 잘하는 처남들과 동서를 보면 부럽기만 했다.

모내기와 타작, 지게질과 도리깨질, 삽질에서 곡괭이질까지 농사일을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죽도록 일하고 돌아오면서 너무 힘든 나머지 아내에게 화를 내며 언짢은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아내는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했지만, 나는 ‘왜 하필 시골 출신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이 고생이야.’라고 생각하며, ‘애들은 시골에 본가가 있는 처자하고는 절대 결혼을 시키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일은 힘들어도 좋은 점도 많이 있었다. 지금까지 필요한 식량과 갖은 양념, 김치를 처가에서 가져다 먹었다. 일하면서 뜯어 온 제철 나물들과 된장찌개가 밥상에 올라오면 고급 한식집의 음식이 부럽지 않았다. 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에 가야 할 날짜가 정해지면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런 세월이 삼십여 년 반복되며 지나갔다. 지금 처가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힘든 농사일을 하지 않아 좋기도 하지만 시장에서 채소를 살 때면 아쉬운 마음도 든다.

처가의 전답은 저수지를 중심으로 몇 군데 흩어져 있다. 농사를 짓고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논은 밭으로 바뀌었고, 그 밭도 잡초가 무성한 묵정밭으로 변했다. 농지를 찾아오는 사람도 교체되었다. 벼 베기를 하다가 막걸리를 마시며 “양서방, 힘들제”라고 말씀하던 장인어른은 안 계시고, 억척스럽게 일만 하던 장모님도 더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자식들과 가족이 나물이나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가끔 들를 따름이다. 이제 처가에 가면 시골의 계절 풍경을 즐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된다.

봄볕이 완연한 사월 초. 도라지를 캐기 위해 아내와 함께 처가에 갔다. 아내는 술을 마실 줄 모르지만, 계절마다 도라지 쑥 돌복숭 매실 오가피 등을 채취하여 항아리에 술을 담근다. 술을 담그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처가에 가는 걸 싫어하는 남자가 뭐가 좋다고 술까지 담가 주는지. 주태백이 못지않은 애주가 남편을 위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술주정도 하지 않고, 다음 날 아침에 해장국을 끓여 달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몇 평 안 되는 도라지밭에 작년에 피었다 쓰러진 꽃대와 잡풀들이 멍석처럼 덮여있다. 나는 세 발 쇠스랑으로 잡초를 제거하면서 땅을 파고, 아내는 호미로 도라지를 캐내었다. 사 년 근 도라지가 구덩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옹기종기 모여 있어 호미질이 조심스럽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 기분은 좋았으나 겨우내 얼었던 땅이 덜 녹은 상태에서 15㎝ 정도의 기다란 도라지를 캐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작업과 휴식을 반복했으나 아내는 쉼 없이 일을 한다. 도라지밭의 1/3 정도를 갈아엎고 두 시간 정도 일을 하면서 목표량 한 포대를 채웠다.

‘후유, 이제 다 끝났다.’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 밭에 가서, 돼지감자랑 더덕 좀 캡시다.” 아내의 말에 어깨가 축 처졌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 먹는 채소를 캔다기에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돼지감자와 더덕을 캐면서 멧돼지가 파먹고 등산객들이 다 뽑아가 남은 게 없다면서 구시렁거렸다. 나는 속으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우짜겠노, 나눠 먹어야지.”라는 말로 위로했다. 아내가 다른 밭에 가서 봄나물을 뜯어가자고 한다. 몸은 힘들지만 여기까지 와서 지천으로 널려있는 제철 나물들을 그냥 두고 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처가 논밭 중에서 가장 크고 농사가 잘되는 저주지 위쪽으로 장소를 옮겼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가져온 떡과 과일로 새참을 먹던 중, 지나간 시간이 영상처럼 흘러간다. 내가 결혼하고 처음 왔을 때 이곳은 논이었다. 모판을 지게에 지고 오르면서 너무 힘들어 모든 걸 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 그 후 마늘 고추 오이 양파 배추 등을 심는 밭으로 바뀌었다. 밭 주변에는 매화 돌복숭 감 대추 오가피 초피 헛개나무 등이 있어 수시로 일을 하러 왔었다. 묵정밭으로 바뀐 지금은 봄나물과 잡풀들이 서로의 영역을 적절하게 나누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한 시간만 하면 되니까, 당신은 몸살이 나지 않도록 사진이나 찍으면서 쉬고 있어요.” 아내는 낫과 호미를 들고 밭으로 들어갔고, 나는 스마트폰으로 저수지의 봄 풍경을 몇 장 찍은 후 밭둑에 앉았다. 매화와 산수유가 드문드문 피어있는 반대편 산기슭의 암자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지금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눈이 먼 스님처럼 봄나물을 맛있게 먹을 생각만 하고 있다. 그래도 아내의 일이 끝나면 내가 짐을 옮기고 부산까지 차를 몰고 가야 하므로 좀 쉬어도 괜찮다고 위안한다.

묵정밭은 봄나물의 향연장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봄나물은 따뜻한 봄볕과 신선한 공기를 맞으며 누가 더 튼실하고 향이 강한지를 뽐내고 있다. 밭 귀퉁이에서 자라는 달래와 부추는 서로 힘이 세다며 줄기를 하늘로 쭉쭉 뻗어 올리고, 정해진 장소도 없이 뿌리를 깊게 내린 냉이와 쑥은 서로가 봄을 대표하는 향을 뿜어낸다고 주장하고, 그늘진 곳에서 조용히 자라는 머위는 식욕을 돋우는 데 최고라고, 몇 년 전에 씨를 뿌려 적응을 잘하고 있는 방풍은 건강식품으로 제일이라고, 손가락 길이만큼 자란 땅두릅은 고기보다 맛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할 말이 없는 잡초들은 가만히 앉아 있는 나처럼 눈만 말똥거리고 있다.

“다 되었어요. 갑시다.” “벌써! 이야, 많이 캤네.” 아내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두 개의 커다란 비닐봉지에 봄나물을 종류별로 가득 채웠다. 손질하고 다듬는 일은 집에 가서 하면 된다. 입구에 세워둔 장모님 전용 유모차에 도라지와 나물을 싣고 처가로 향한다. 처가에 와서 일하고 이렇게 기분 좋은 적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허약한 신체에 봄이 가득 채워질 걸 생각하니 집으로 향하는 운전대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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