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은상 춘양역 플랫폼에 섰다. 나란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철길과 반세기 만에 조우(遭遇)한다. 만나서는 안 되는 평행선이 저 멀리 소실점으로 만나 사라진 철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철길 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들은 나를 기억이라도 하는 것일까. 바람에 하늘거리는 여린 모습은 그 시절의 내 모습처럼 가냘프기만 하다. 바람이 부는 대로 어쩔 수 없이 흔들려야 했던 젊은 날의 자화상을 코스모스가 불러온다. “뚜~”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서서히 역으로 들어선다. 기적소리는 한순간에 세월을 되돌린다. 그날, 남편은 우유병과 기저귀를 챙겨 넣은 가방을 들고 앞서 뛰었다. 아기를 업은 나는 분명 뛰고 있었지만 걷는 듯 더디기만 했다. 저 멀리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산모롱이를 돌아오..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은상 길은 줄이다. 줄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길이 만남을 만들고 줄이 사람을 만들어 내는 가운데 저마다의 삶에는 갖가지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만약 누군가가 옛길을 찾아 간다면 이는 과거의 어느 줄을 만나려는 갈망 때문이다. 가늘디가는 정맥 같은 산동네 집들이 골목을 따라 줄처럼 이어져 있다. 곁지기인 그와 나는 은혜를 갚는 까치의 심정으로 골목을 접어들었다. 사십 여 년이 지난 세월이건만 이곳만은 세월도 비켜갔나 보다. 그가 한 하꼬방 앞에 섰다. 집이 주인을 닮는 것일까, 아니면 주인이 집을 닮는 것일까. 사람은 분명 바뀌었는데 내미는 얼굴은 낯설어도 여전히 낯이 익다. 엄동설한, 아궁이 연탄불도 못 피울 형편이었을 때, 감자나 강냉이를 간간이 건네주었다는 ..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금상 한 마리의 거미가 촉수를 세운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까맣게 그을린 서까래 사이에 거미들이 이리저리 줄을 쳐놓았다. 바짝 다가가 거미줄을 살펴본다. 촘촘하니 방사형으로 쳐놓은 그물이 제법 정교하다. 자신의 몸속에서 진액을 뽑아내며 거미줄을 마무리 하던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천장 틈 사이로 몸을 숨긴다. 덩그런 기와집은 주인을 잃은 채 빈 집이 되어있다. 기와는 부스스하니 윤기를 잃었지만, 아침햇살은 예전처럼 두꺼운 마루에 반질반질 올라앉는다. 삐꺽거리는 마루에 올라 작은방 문고리를 잡는다. 베틀에 앉아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잠시 눈에 아른거린다. 작은방 문을 열어본다. 베틀이 놓였던 자리가 휑하다. 닳아버린 몽당 빗자루 하나가 구석에서 옛 기억을 쓸어내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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