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봉* 속 십만원 / 권대웅 "벗어놓은 쓰봉 속주머니에 십만원이 있다"//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무슨 큰 비밀이라도 일러주듯이/ 엄마는 누나에게 말했다/ 속곳* 깊숙이 감춰놓은 빳빳한 엄마 재산 십만원/ 만원은 손주들 오면 주고 싶었고/ 만원은 누나 반찬값 없을 때 내놓고 싶었고/ 나머지는 약값 모자랄 때 쓰려 했던/ 엄마 전 재산 십만원// 그것마저 다 쓰지 못하고/ 침대에 사지가 묶인 채 온몸을 찡그리며/ 통증에 몸을 떨었다 한 달 보름/ 꽉 깨문 엄마의 이빨이 하나씩 부러져나갔다/ 우리는 손쓸 수도 없는 엄마의 고통과 불행이 아프고 슬퍼/ 밤늦도록 병원 근처에서/ 엄마의 십만원보다 더 많이 술만 마셨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고참이 된 누나가 지쳐가던/ 성탄절 저녁/ 엄마는 비로소 이 세상의 고통을 놓..
스무 살 적. 내 꿈은 이 땅 대한민국, 코리아에서 멀리 떠나거나 머리를 깎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두환이 싫었고 취직이 안 되는 이 나라가 미웠고 떠나간 사랑이 너무 슬펐다. 남쪽으로 가고 싶었다. 지구 최남단 끝 우수아이아,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싶었다. 등 뒤로 지구가 아닌, 인간들이 살고 있지 않은 저 바다 너머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다가 등대불이 켜질 무렵 부둣가 술집으로 가서 아르헨티나 출신의 술집 여자와 탱고를 추며 취하고 싶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오!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가도 가도 끝없는 남미 들판을 달리는 트럭 운전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외로워지면 문득 떠나간 사랑이 그리워..
1. 축구공이 흘러오듯이 삶이라는 경기에서 찬스는 수시로 온다.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내지는 못할망정 흘러들어오는 찬스를 보면서도 가만히 있거나 매번 놓치는 사람을 보면 죽비로 그 졸고 있는 영혼을 내리쳐주고 싶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혼신을 기울여야 한다. 밥벌이 앞에서 징징거리거나 투덜거리지 말아야 한다. 숭고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배가 고프고 가난했던 날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갈망하다! 열망하다! 갈구하다! 간절하다! 그렇게 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나는 가난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시인이 가난하기도 하고 적당히 게을러야지! 아니다. 그것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하고 게으르고 시인입네 술로 살고 독설하고 꼬이고 뒤틀려 있으면 그것은 시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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