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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나의 시 나의 삶 / 권대웅

부흐고비 2021. 10. 9. 04:59

1.
축구공이 흘러오듯이 삶이라는 경기에서 찬스는 수시로 온다.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내지는 못할망정 흘러들어오는 찬스를 보면서도 가만히 있거나 매번 놓치는 사람을 보면 죽비로 그 졸고 있는 영혼을 내리쳐주고 싶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혼신을 기울여야 한다. 밥벌이 앞에서 징징거리거나 투덜거리지 말아야 한다. 숭고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배가 고프고 가난했던 날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갈망하다! 열망하다! 갈구하다! 간절하다! 그렇게 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나는 가난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시인이 가난하기도 하고 적당히 게을러야지! 아니다. 그것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하고 게으르고 시인입네 술로 살고 독설하고 꼬이고 뒤틀려 있으면 그것은 시인이 아니다. 시인은 폐병쟁이고 술주정뱅이고 문란하고 요절하고 시만 쓰고 가난하고…. 그것은 김관식 시대 시인들의 이야기다.

세상에 그 어느 하나 허투루 사는 것들이 없다. 하물며 베짱이도 밤마다 풀 섶을 헤매며 잎에서 잎으로, 나무에서 나무로 날며 먹이를 사냥하며 산다. 아침에 피는 나팔꽃 한 송이를 보라! 얼마나 강렬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가. 꿈틀거리는 것들, 온몸으로 포복하며 살아가는 것들.

시인이 자신의 시를 밤새워 고쳐가며 혼신을 다하여 쓰는 것처럼 삶에서도 그래야 한다. 직업 앞에서, 밥벌이 앞에서, 관계,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서도. 삶은 생활 속에 생존이 아니라 생존 속에 생활일 수밖에 없다. 견디고 버티고 이겨나가야 하는 것. 힘들고 아프고 어려운 생존의 삶을 아름답고 따뜻하고 행복한 생활로 환원시키는 것. 품성과 품격을 쌓는 것, 영혼의 결이 높아지는 것. 그래서 구름처럼 자유롭고 바람처럼 투명해지는 것. 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는 것. 진정한 시인이 되는 길. 그래서 나는 지금 포복 중이다.

2.
달이 왔다. 어느 날 문득 졸고 있는 내 영혼을 달빛이 내리쳤다. 한 번은 무서워서 피했고 두 번째는 먼 나라에서 여행을 하다가 달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고 세 번째는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밤 마당에 나와 앉아 있다가 문득 달을 보고 울었다. 달의 말을 그만 들어버린 것이다. 삼십 대 사십 대 그리고 세 번째로 달이 내게로 왔을 때는 오십이었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라는 연극처럼 나는 오십에 달을 발견했다.

달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고 달의 메시지와 중력과 에너지가 이 세상을 끌고 간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도 배웠다. 그것들을 여기서 모두 말할 수도 없고 글로써도 표현할 수 없다. 달은 인류의 거울이며 살아있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달을 닮아있고 달의 영향을 받는 달의 산물이라는 것만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아니 중요한 것은 달의 메시지가 ‘주다’라는 것이다. 태양은 열매를 맺게 해주고 왕성하게 성장을 시켜주기도 하지만 때로 대지주처럼 모두 거두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달은 오직 주기만 한다. 어두운 밤 속에서 온유하고 온화하게 주고 또 주고 있다.

매일 밤 달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무리 어두워도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다음은 없다. 오늘 하루, 무엇보다 밤에 행복해야 한다. ‘행복해야 해’ 라는 말이 식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말 한마디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이 세상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달에 대한 시들을 쓰기 시작했다. 달시. 그림이라고는 배워본 적도 없고 미술학원 문턱도 가 본 적이 없었는데 달 그림도 그리게 됐다. 그릴 때마다 연습 한 번 안 하고 그리는데도 그때마다 마치 달이 와서 그려놓고 간 것 같다.

2년 만에 다섯 번의 달 시화전시를 했고 수익금 전액을 달의 메시지 ‘주다’에 동참했다. 달의 목동이 된 것 같았다. 달의 기운과 메시지를 정확히 듣고부터 달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밀어 넣어주기 시작했다.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을 돕는 달시화 전시를 중국 북경과 일본 오사카에서도 열게 됐다.

어려운 와중에도 누군가를 돕는다는 마음이 자기를 더 발전시키고 더 부유하게 한다. 행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쓰던, 자기에게 쓰던 써야 한다. 밀물이 왔다가 썰물이 가듯 삶은 딱 그만큼인 것이다. 없으면 우주은행 달 점장이 밀어 넣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왔다.

열망하고 갈망하며 때로 갈증하며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까에서 나는 이제 삶을 어떻게 써야 할까로 바뀌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이세 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가난이다. 그래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강물처럼, 자유롭고 투명해지기 위해 나는 포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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