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푸석푸석하던, 누룩 띄운 독 같던 나무들이 봄이 되어 빛깔을 받는다. 매화와 산수유나무가 우선 그렇다. 불꽃을 받는다. 나는 지난 겨울 보고 들었다, 빈집의 마음을, 바람의 노래를, 얼음의 언어들을, 침묵의 세계를. 요즘 해금 같은 가늘은 소리가, 숨결이 나무에게서는 난다. 새순 한 촉을 땅 바깥으로 밀어내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전전긍긍했을까? 참혹했을까? 새순 돋는 나무에게는 회오리가 있다. 새순 돋는 나무들을 보면 나에게 중대사는 무엇인가 묻게 된다. 등짝을 뚫고 나오는 시, 아래로 아래로 땅을 파고 들어가 처음 만난 한 줄기 샘물 같은 그런 시를 받아낸 적이 있는지 묻게 된다. 봄이 오는 산길 들길을 걸으면 그래서 내 마음은 더더욱 오갈 데 없는, 춘설 분분한 공중이다. 나는 어지러운 넝쿨이..

개는 남사당패처럼 신나게 쏘다녀야 제격이다. 개집이라 할 만한 것도 차려주지 않는 게 좋다. 낮에는 섬돌에 턱을 괴고, 밤에는 대청마루 밑에서 대충 자야 제격이다. 본디 개들은 암탉을 쫓아 다니거나 개 중에 거센 놈은 암탉의 목덜미를 콱 물거나 해야 나른한 대낮이 시끌시끌 생기발랄해진다 그러다 돌도 맞고 해야 한다. 줄행랑을 치는 족제비들을 뒤따라 저 산 밑까지 뛰어 다녀야 바야흐로 폼이 난다. 70년생 개띠인 나는 개와 선연(善緣)이 아니다. 시골집에서 키우던 개들은 엄동설한에 대부분 얼어 죽었다. 46년 생 개띠인 어머니가 개를 묶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이유를 찾았다. 하릴없이 빈 개밥그릇이 나 지키고, 배를 뒤집으며 게으르게 구르고, 말뚝과 목에 달린 개줄 사이의 그 무료한 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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