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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푸석푸석하던, 누룩 띄운 독 같던 나무들이 봄이 되어 빛깔을 받는다. 매화와 산수유나무가 우선 그렇다. 불꽃을 받는다. 나는 지난 겨울 보고 들었다, 빈집의 마음을, 바람의 노래를, 얼음의 언어들을, 침묵의 세계를. 요즘 해금 같은 가늘은 소리가, 숨결이 나무에게서는 난다. 새순 한 촉을 땅 바깥으로 밀어내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전전긍긍했을까? 참혹했을까? 새순 돋는 나무에게는 회오리가 있다. 새순 돋는 나무들을 보면 나에게 중대사는 무엇인가 묻게 된다. 등짝을 뚫고 나오는 시, 아래로 아래로 땅을 파고 들어가 처음 만난 한 줄기 샘물 같은 그런 시를 받아낸 적이 있는지 묻게 된다. 봄이 오는 산길 들길을 걸으면 그래서 내 마음은 더더욱 오갈 데 없는, 춘설 분분한 공중이다. 나는 어지러운 넝쿨이다.

서른 해 전 아버지는 아마도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봄에 볍씨를 장만했을 것이다. 자루에 담긴 싸락눈 같은 볍씨들을 물에 담근 후 이틀 사흘 기다렸을 것이다. 가라앉고 뜨는 씨앗들을 가려 아버지는 봄논에 비로소 파종을 했을 것이다. 물에 가라앉는 당찬 놈들만을 골라 한 해 농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시 짓는 일도 농사라면 농사일 터.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만나면 말이 없어진다. 내 농사는 어떤 살림인가? 남을 살리는 농사인가? 뜨거운 한 그릇 밥을 만드는 농사이기라도 한 것인가? 비참한 일이다.

시골에 가면 저녁 무렵 오리떼 때문에 마을이 흥성거린다. 포도밭이나 물가에서 낮을 보낸 오리들이 해 떨어져 우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습관의 힘으로 돌아가는, 오리떼를 보면서 시간도 오리떼처럼 밀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오리떼가 멀리 사라지는 동안 낮은 밤으로 변화한다. 흘러간다. 무상(無常)하다. 시간이 변화하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보았다. 풍경을 통해, 나의 오관을 통해 시간의 육체를 보았다. 사람들은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무상하다. 어릴 때 마을 골목길을 따라 상여 나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상여가 나갈 때면 사람들은 집의 창문을 닫고 널어둔 빨래를 거두어들였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상여가 산 그림자 속으로 잠겨들 때 나는 시간의 육체를 보았다.

서른 해 전쯤 아버지는 아마도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의 묘혈을 파는 일로 일당을 벌어온 아버지는 군불을 지피며 상갓집에서 얻어온 마른 떡을 구워주었다. 아버지는 도무지 말이 없었다. 그 긴 침묵을 나는 또 시간의 육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형제를 내가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하관하는 일이 있다. 숙부를 하관할 때였다. 엉겁결에 숙부의 종아리를 만지게 되었다. 물렁물렁한 종아리였다. 그때도 나는 시간의 육체를 보았다. 작년에 중국의 한 시골을 여행 할 기회가 있었다. 어린 당나귀가 짐 실린 수레를 끌고 있었다. 어둑어둑할 때였다. 수염이 길고 몸이 호리호리한 촌부가 당나귀를 끌고 있었다. 흙길에 바퀴소리가 덜컹거렸으나 적적했다. 그때도 길 위로 밀려가는 시간의 육체를 보았다. 무상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인연'이라는 말에는 훈기가 있다. 이 말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작용'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미래의 내가 '현재의 작용'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내 몸과 마음이 '다른 이의 작용'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인연'이라는 말은 '어깨를 겯고 있는 어떤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그러므로 상관하여 있다는 뜻이요, 지극하고도 완전하게 평등하다는 말이다. 상즉상입하는 생명세계라는 뜻이다. 지배도 없으며 고문도 없으며 조금의 가혹함도 없다. 나는 어머니에 대해 빚진 인연이 많다. 아마도 그때 어머니는 지금의 내 아내보다 더 어렸을 것이다. 내 눈에 검불이 들어갔을 때 당신의 가장 부드러운 살로, 혀로 내 눈동자를 핥아 주던 일을 가끔 떠올린다. 자식들이 보챌 때 젖을 물리던, 빈 젖을 물리던 일을 가끔 떠올린다. '인연'이라는 말은 자꾸 곱씹으면 뒷맛이 떫고 혀가 아리다. 그러나 ‘인연’과 ‘관계’라는 말을 나는 내 시의 밑돌로 괸다.

시는 옆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는 여울과 같은 것이다. 시는 흐르되 흐르는 소리를 음악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내 시가 그처럼 그러저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시는 반죽을 처대서 마음의 그림자인 형상을 빚는 것이다. 반죽을 너무 오래 주물럭 주물럭하면 시는 도망가고 만다. 반죽이 형상을 빚기도 전에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죽으로 형상을 일단 빚어놓으면 그걸 다시 부수어 다른 형상으로 만들기는 더더욱 어렵다. 시는 만들어놓으면 끝내 서글픈 것을 보여준다. 그늘에서 말라가면서 형상은 뒤틀리면서 균열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은 열렬하면서도 슬픈 무엇"이라고 했다지만, 그래서 시를 쓰는 밤에는 목석 같은 사람이어도 철철 우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내력을 들여다보면 슬프지 않은 것이 없다.

시골 마을에는 북한이 고향이라는 칠순의 노인이 있다. 그는 한번도 자신의 고향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본인의 전답이 없이 남의 논밭 일에 품을 팔아 평생을 살아왔다. 그의 봄날에는, 그의 지게에는 쟁기가 실려 있다. 시골 마을에는 미친 사람이 더러 있다. 지난 설날 마을 회관방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엉엉 울던 두 사십대 중년의 사내들이 있었다. 하나는 미장이이고, 하나는 캄벨 포도 농사를 짓는다. 초등학교 동기들은 하나는 시골 이발사이고, 하나는 햄 공장 직원이며, 하나는 구조조정 당하는 비정규직이고, 하나는 덤프트럭을 몰고, 하나는 가구점을 하고, 하나는 전신주를 세우고, 하나는 이장이고, 나는 시를 쓴다. 그들은 내가 제일로 폼난다고 술 한잔 받으라 한다. 시골 마을에는 낮 동안 제트기가 멀리 날고, 밤 동안 오가는 사람은 없고 개는 짖는다. 아버지는 병을 얻어 눈이 멀고, 꽃이 피는 봄산에는 노루가 운다. 모든 것은 근경(近境)이 슬프다. 당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절에서 밥을 먹을 때 스님들이 사용하는 그릇을 '발우'라 한다. 발우는 '적당한 양을 담는 밥그릇'이란 뜻이다. 발우에 밥을 받들 때 스님들은 노래한다. 아니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를 단속한다. "이 공양을 응당히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라고 묻고, "다만 이 몸이 말라 병들지 않도록 약으로 삼아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고 단속한다. 시가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 '밥'이라면 지극하게 받을 일이다. 여기 하나의 빈 발우가 내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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