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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남사당패처럼 신나게 쏘다녀야 제격이다.

개집이라 할 만한 것도 차려주지 않는 게 좋다. 낮에는 섬돌에 턱을 괴고, 밤에는 대청마루 밑에서 대충 자야 제격이다. 본디 개들은 암탉을 쫓아 다니거나 개 중에 거센 놈은 암탉의 목덜미를 콱 물거나 해야 나른한 대낮이 시끌시끌 생기발랄해진다 그러다 돌도 맞고 해야 한다. 줄행랑을 치는 족제비들을 뒤따라 저 산 밑까지 뛰어 다녀야 바야흐로 폼이 난다.

70년생 개띠인 나는 개와 선연(善緣)이 아니다.

시골집에서 키우던 개들은 엄동설한에 대부분 얼어 죽었다. 46년 생 개띠인 어머니가 개를 묶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이유를 찾았다. 하릴없이 빈 개밥그릇이 나 지키고, 배를 뒤집으며 게으르게 구르고, 말뚝과 목에 달린 개줄 사이의 그 무료한 거리를 뱅뱅 돌다 끝내 동사했다. 땡볕을 지고 앉아 몸에 파리가 꾀는 여름날의 개꼴도 볼썽사납다. 개는 벌판보다 멀리 멀리 자꾸 나아가는 놈이어야 한다.

어릴 때 겨울철이면 소도둑이 극성을 부렸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역시 묶여 살던 개들이 먼저 나가떨어졌다. 소도둑들이 오징어 껍질에 극약을 묻힌 줄도 모르고 선뜻선뜻 냅다 받아 먹다 그날밤으로 저승행이었다. 한 점 살점도 아니고 고작 비릿한 껍질의 냄새에 홀릴 정도이니 그런 미혹됨도 드물 것이다.

게다가 묶인 개들은 겁이 많기가 유난스럽다.

개 한마리가 짖으면 온동네 개들이 다 짖는다. 그들의 허박하고도 겁많은 동류의식은 차마 말해 무엇하랴. 묶여 사는 개들은 남들이 낮잡아 일러도 둘러댈 말이 없다.

‘58년 개띠’라는 말은 누구나 안다.

그들 뒤에는 ‘100만명의 신생아’와 ‘국민교육헌장’과 ‘조개탄 난로’와 ‘뺑뺑이’와 ‘넥타이부대의 선봉’과 ‘사오정’이 라는 수식이 따라 붙는다. 형편을 들어보면 측은하고 백척간두에 선 사람들 같다.

역사가 복기(複棋)가 아니듯 70년생 개띠는 좀 다르다.

70년생 개띠들은 두발과 교복의 자율화 세대이고, 불완전하지만 87년 체제의 수혜자들이고, 영상세대이다. 상상력은 도발적인 모드로 바뀌었다. 하여 신세대라는 수식어를 뒤꽁무니에 달았다. 70년생 개띠들은 적어도 더럭더럭 떼를 쓰지도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울혈도 없다.

나는 58년 개띠들을 흠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의 폭포 같은 에너지를 응원한다. 소위 ‘점잖은 속배(俗輩)’이길 거부해 온 그들의 정신을 존중한다. 그러나, 58년 개띠들이 그들의 수난시대 회고담을 장황하게 말하는 것은 미덥지 못하다. 그런 것도 가치가 있겠지만, 우리 개띠들에게 급한 일은 우리 사회가 은연중에 가압류한 야성을 스스로 되돌려 받는 일이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흰 개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흰 개는 재수가 없는 개라고 시장에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흰 개를 장날에 내다 팔 때는 숯이나 재를 칠해서 검정 무늬의 개로 만드는 해프닝이 있었다. 개에 대한 잘못된 무늬 의식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작은 행복에 꼬리치고 언제나 순종하는 것이 개라는 생각 또한 앞서의 무늬 의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개를 묶어 두지 말자. 개는 굳은살의 발바닥이 재산이다. 개는 막무가내이거나 제멋대로 용기백배해도 좋다. 닭도 잡고 범도 잡는 게 개이다.

오늘의 운세를 펼치니 70년 개띠는 “학이 닭의 무리 가운데 서 있다”한다.

상괘이다. 그러나 닭의 무리 가운데 성깔이 칼칼한 개 한마리를 풀어 놓아야 더욱 상괘이다. 벌써 대낮의 세상이 시끌시끌하지 않은가. 개는 부지런히 쫓고 되돌아오지 않을 듯 멀리 멀리 쏘다녀야 일품이다. 쏘다니다 돌에 맞아 고꾸라지면 또 어떤가. 냉큼냉큼 엎드리거나, 고작 오징어 껍질에 홀려 선뜻선뜻 받아먹다 캄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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