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 이창옥
초가지붕에는 박이 뒹군다. 이제는 영그는 계절인가, 갈 볕에 쬔 박의 이마가 반질거리고 한나절 반짝 햇살에 살랑 이는 바람은 가을밭에 깔리어 대추랑 감이랑 호도랑 그리고 아람으로 번 밤송이가 안으로 안으로만 익어만 간다. 들녘엔 오곡이 고개를 떨구며 노오랗게 속살대는 모습들. 산도라지, 더덕 잎이 향기를 풍긴다. 간밤 무서리에 후숙된 검게 탄 산추 열매가 한층 반닥거리는 품이 계절을 더욱 부추긴다. 갈 숲 언저리에 털 송이 산새들은 겨우살이 채비에 오르르 떨고, 골속 도토리 줍기에 다람쥐 발길이 분주하다. 양지 쪽 밤솔위에 늦은 매미 소리가 청랑하게 들리고, 갈대 숲에는 하얀 갈목이 사각대는 품이고 보면 지금은 오직 갈무리한다는 탐욕뿐이던가. 어제 어머님께서 황금색을 띤 바가지를 백여 개를 가지고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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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2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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