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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바가지 / 이창옥

부흐고비 2021. 4. 22. 08:59

초가지붕에는 박이 뒹군다.

이제는 영그는 계절인가, 갈 볕에 쬔 박의 이마가 반질거리고 한나절 반짝 햇살에 살랑 이는 바람은 가을밭에 깔리어 대추랑 감이랑 호도랑 그리고 아람으로 번 밤송이가 안으로 안으로만 익어만 간다.

들녘엔 오곡이 고개를 떨구며 노오랗게 속살대는 모습들. 산도라지, 더덕 잎이 향기를 풍긴다. 간밤 무서리에 후숙된 검게 탄 산추 열매가 한층 반닥거리는 품이 계절을 더욱 부추긴다.

갈 숲 언저리에 털 송이 산새들은 겨우살이 채비에 오르르 떨고, 골속 도토리 줍기에 다람쥐 발길이 분주하다. 양지 쪽 밤솔위에 늦은 매미 소리가 청랑하게 들리고, 갈대 숲에는 하얀 갈목이 사각대는 품이고 보면 지금은 오직 갈무리한다는 탐욕뿐이던가.

어제 어머님께서 황금색을 띤 바가지를 백여 개를 가지고 오셨다. 산 너머로 시집 오셔서 해마다 한두 개씩 모아 두었던 바가지를 당신의 곱고 알뜰한 역사를 지닌 덩치를 몽땅 자식에게 전수해 준 것이다.

"얘야, 이 바가지를 백 개만 모으면 부자가 된단다."
하시며 정성된 주문을 하신다.

다독다독 정으로 도닥인 바가지를 요모조모 만지다 보니 당신의 옛정과 여인의 맺힌 한을 더듬어 본다. 큰 바가지는 알곡이 한 말은 실하게 담아지겠고, 알팡지고 곱게 잘 생긴 작은놈은 새색시 마냥 수줍은 듯 미소롭고, 여기에는 당신의 알뜰한 애정이 숨을 쉬는 듯 생생한 모습으로 소망이 일게 한다.

손의 정을 나누면서 살피다 보면 생김생김이 형형으로 보이고, 이골 저 골에서 숱한 태양의 세례를 받고 자란 결과에 마음은 심연에 빠뜨리어 잔잔한 미를 갖게도 한다. 마치 가을의 청취가 묻어나는 저 연의 기품을 실감하게 된다.

어머니.

당신을 이제 골진 얼굴로 그대 젊은 시절 꽃피우던 아낙의 긴치마 빨간 댕기로 쪽찐 시절, 바가지의 그림자로 반추하는 지금, 차림의 색시가 자꾸만 어제만큼 다가서는 것은 왜일까.

고독과 슬픔과 웃음과 온갖 기억들이 교차하는 마음 밭이 알진 바가지로 응축되는 여린 심상을 알 것도 같다만, 어머니로서의 테두리 안에는 겨자씨만큼이나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만 한 웅큼은 이해가 되리라 느껴도 본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박 바가지를 살림에 사용한다. 시대가 변질되고 인심이 퇴락 되어도 당신의 생활 안에는 정서가 남아 있어 찰진 흙의 마음과 이웃과 호롱불 같은 밝은 심정으로 치마폭을 안긴 채 삶을 즐기는 뜻은 고고한 학의 모습이 아닐까.

순정과 봉사와 용서와 희생의 자세는 믿음으로 엮어 오는데 오늘의 젊은이가 수렴해야 함에도 그저 지나쳐 버리는 작태에 안타까워한다.

조각하는 이웃이 박바가지 공예품에 어머니의 얼을 심어 보겠다고 달라고 하지만, 그러나 예술의 공예도 가치롭지만 나로서는 어머니의 역사가 서린 물건이며 귀한 것이기에 오래도록 간직해 보겠다는 일념이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곁을 떠난 바가지는 정을 잃어버리기 쉽지만 가까이 두고 문학의 예술성을 글귀로 남긴다면 길고 구원하게 그분의 사랑의 체취가 소몰소몰 피어나지 않을까.

생이 길고도 짧은 것이라면 예술의 영원성을 새겨 훗날 어머니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보람이 되지 않을까.

시장을 가보면 색색의 모양으로 된 플라스틱 바가지가 산더미로 쌓여 있다.

그러나 박으로 된 자연산 바가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요사이 사람은 쉽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진짜 멋은 순수 자연에서 온다는 철학을 깨치지 못한 탓일까. 사색의 모양새는 잘못 착색되어 까불대는 몰 자연이 거듭나고 있다는 현실이 서글프기까지 하다.

사람은 진실인 진리를 그린다. 그 진리 안에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연의 미에는 꾸밈이 없으며 초록은 초록대로 아름답고 꽃은 꽃대로 향기의 신비를 지닌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며 온전한 삶이라 한다면 생의 보람을 찾는 인간이 그 진리된 참사랑을 왜 잃어 가고 있는지 딱할 뿐이다. 삶의 애착을 자연에 던지고 의지한다면 이는 곧 선이란 믿음으로 변화되지 않을까.

동그마니 영글고 있는 지붕에 박덩이가 안으로 밖으로 박색희색감으로 태양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다.

우리도 이와 같이 겉과 속이 같아지는 진리를 배우고 싶다. 가을의 전령사가 내 앞에 선다. 한나절 햇볕이 구실을 다하고 있는 지금에는 어머니의 자라 온 자국이 자꾸만 마음의 머리에 앉는 다 곱던 때가 어제인 듯 그리워 온다. 확실히 박덩이는 꽃도 희고 박속도 희고 나의 속가지 하얗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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