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自然)에 흥미를 잃은 지가 오래다. 그것은 내 생활이 강파르고 윤기(潤氣)가 없어진 탓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감격을 잃고 살아온 데 기인한 것이라 함이 더 정확할는지도 모른다. 절경(絶景)을 앞에 두고 바보가 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이렇게 자연 앞에서 허수아비인 내가 그래도 한 가닥 슬픔이나마 느낄 줄 아는 것만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슬픔을 느낄 줄 아는 다행 때문에 내가 인간을 저버릴 수 없게 되는지도 모른다. 인간에의 흥미마저 잃어버린다면 나는 바보가 되는 슬픔마저 잃어버리고 말게 되는 셈이다. 허수아비가 되는 슬픔조차 나에게서 없어지는 것이다. 무료(無聊)해지면 산수(山水)를 찾는 대신 나는 저자를 찾곤 한다. 사람들이 저자는 속(俗)되다고 하지만 나는 그 저자가 그리워지는 때..
꽃 / 박양균 --그 신(神)은 너에게 침묵(沈黙)으로 답(答)하리라. //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망(亡)한 이 황무(荒蕪)한 전장(戰場)에서 이름도 모를 꽃 한 송이 뉘의 위촉(委囑)으로 피어났기에 상냥함을 발돋음하여 하늘과 맞섬이뇨.// 그 무지한 포성(砲聲)과 폭음(爆音)과 고함(高喊)과 마지막 살벌(殺伐)의 피에 젖어 그렇게 육중한 지축(地軸)이 흔들리었거늘 너는 오히려 정밀(靜謐) 속 끝없는 부드러움으로 자랐기에 가늘은 모가지를 하고 푸르른 천심(天心)에의 길 위에서 한 점 웃음으로 지우려는가----.// 창 / 박양균 창(窓)은 밤을 믿으려 하고/ 내가 창(窓)을 믿으려 합니다.// 누구의 구원(救援)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이 암묵(暗墨)에서/ 창(窓)은/ 스스로의 폭(幅)을 기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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