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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박양균 시인

부흐고비 2021. 9. 23. 09:25

꽃 / 박양균
--그 신(神)은 너에게 침묵(沈黙)으로 답(答)하리라. <릴케>//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망(亡)한 이 황무(荒蕪)한 전장(戰場)에서 이름도 모를 꽃 한 송이 뉘의 위촉(委囑)으로 피어났기에 상냥함을 발돋음하여 하늘과 맞섬이뇨.// 그 무지한 포성(砲聲)과 폭음(爆音)과 고함(高喊)과 마지막 살벌(殺伐)의 피에 젖어 그렇게 육중한 지축(地軸)이 흔들리었거늘 너는 오히려 정밀(靜謐) 속 끝없는 부드러움으로 자랐기에 가늘은 모가지를 하고 푸르른 천심(天心)에의 길 위에서 한 점 웃음으로 지우려는가----.//

창 / 박양균
창(窓)은 밤을 믿으려 하고/ 내가 창(窓)을 믿으려 합니다.// 누구의 구원(救援)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이 암묵(暗墨)에서/ 창(窓)은/ 스스로의 폭(幅)을 기루는 것입니다.// 그 파장(波長) 같은 격정(激情)을/ 동경(憧憬)하는 창(窓)에 기대어/ 나는 당신(當身)을 부정(否定)하면서도/ 당신(當身)의 구원(救援)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창(窓)을 믿고/ 창(窓)은 밤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머리를 빗는다 / 박양균
갸우듯이 고개를 뒤으로 제끼고 머리를 빗는 여인의 이마에는 흐르는 물소리가 소복한 등성이를 이룩하여 3월이 온다.// 온전히 이 한 때를 귀 기울이고 겸허히 빗을 잡은 손이 이따금 가벼운 원(圓)을 그리며 거기 무늬로 퍼지는 곳에 여인의 모운 눈은 무엇을 새기는가.// 우리의 조상은 어찌하여 사람이 죽어 머리를 푸는 것인지 이렇게 3월에 앉아 머리를 빗는 여인은 양지(陽地)에 깔리운 옛것을 디디고 기도(祈禱)를 자세(姿勢)하는 마음에 있다.//

빙하 / 박양균
바보가/ 되어/ 물러간/ 하늘 아래/ 솟은/ 고층건물의/ 지붕들이/ 더러는/ 窓들이/ 어쩌면/ 꼭/ 먼 날의/ 빙하(氷河) 같다.// 그것은/ 한/ 절정(絶頂)에서처럼/ 냉각된/ 서로의/ 호소가/ 더 많은/ 바람 소리로 장식하고/ 그렇게/ 응결(凝結)되어/ 하늘을/ 흐르는 것은/ 숱한/ 발밑에/ 아우성을/ 운하(運河)처럼/ 갈라놓고/ 강은 호위(護衛)도 없이/ 세찬 발의(發議)로써/ 오늘을/ 의지하는/ 것이다. 일체의/ 감동이/ 용납되지/ 않는/ 그 갈라진/ 운하의 파수(把守)처럼/ 사건을 두려워/ 하면서/ 사건을/ 기다리는/ 시민의/ 이마 위에/ 그것은/ 어쩌면/ 격한 감동으로/ 느릿느릿/ 유동(流動)하는/ 시간 속에서/ 오늘을/ 척도(尺度)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명에/ 가시가/ 돋친/ <안테나>를 저만치 두고/ 빙하는/ 노병(老兵)처럼/ 정숙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바보가/ 되어/ 밀리는/ 하늘 아래/ 고층건물의/ 기둥들이/ 더러는/ 窓들이 없는/ 소리를/ 소리로써/ 장식(裝飾)하며/ 훗날의/ 빙하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계절 / 박양균
東으로 트인 玄關에서 하로를 向해 구두끈을 매노라면‥‥/ 푸성기 같은 아침이 구두 끝에 와 머문다 잊어 버린 時間을/ 生覺해 본다 가을‥‥‥//

일어서는 빛 1 / 박양균
비자국이 말끔한 뜰에/ 아이들이 熱心히 땅뺏기를 하고 있다./ 화살대신 퉁기는// 사금파리의 부딪치는/ 가벼운 소리가 날 때마다/ 그들 領主의 誕生/ 때마침 돌층계에 일어서는 빛/ 두리기둥의 둥근 그림자에/ 大理石 무늬가 포개진다./ 領土의 얼마를/ 神에 바치는 祭典도 끝났다.// 領主는 이윽고/ 어깨 위에 옮아 온/ 대낮의 빛을 다스리고 있다./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 아득한 年代는 더욱 알 수 없다./ 비자국이 말끔한 뜰에/ 닭들이 모이를 쫓고 있다./ 포물선을 이룬 그들 옛 領土에/ 물을 뿌리며 석양을 맞는다.// 저녁 床에 불러드리는/ 어머니의 하얀 행주치마에/ 아이들은 비로소 그들의 말로 된 旗를 꽂는다//

아내와 란(蘭) 이야기 / 박양균
가을날 섬섬한 뒷모습같이/ 아내는 난을 손질하고 있다./ 서울에도 서녘 막바지/ 초인종 없이 살아가는/ 버려진 옹기 속의 난의 숨결만큼이나/ 말없이 하로는 저문다./ 內藏山 젊은 스님이 타는 단풍에 취하듯/ 役事를 어지럽혀 놓고/ 海外로 가버린 어지러운 절터에서/ 옮겨 심은 난은 그만한 사연에서처럼/ 난을 손질하는 아내의 뒷모습같이/ 난은 늙어 가고/ 아내는 난만큼이나 간밤의 흰 서리로 들어앉는다.//

꽃잎 하나와 / 박양균
南向 툇마루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늙은 夫婦가 風船 하나를 가지고/ 人生을 즐기는 듯한/ 戲曲을 읽은 적이 있다./ 퍽이나 싱거운 作者라고 생각했다./ 吐含山 石窟庵 佛像을 처음 보았을 때도/ 소문난 잔치로군 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되었을까./ 흐른 세월은/ 川獵이랍시고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그고/ 水晶빛 꽃잎 하나를 따서 물에 띄운다./ 흘러내리지 않게 앞을 막기도 하고/ 물살을 거스르게도 했다./ (그놈은 간지러워하기도 하고 낄낄거리기도 하고 심술을 부리다가 먼 허공을 휘젓기도 했다)/ 해는 어슴어슴 저물어 가고 종일 꽃잎 하나와 노닐다 문득/ 내 손끝에서 맴돌던 꽃잎을/ 넉넉한 여울에 실어 멀리 흘려 보내기로 했다//

원고청탁(原稿請託) / 박양균
현대시학/ 창간 13주년 기념 4월호에/ 시 한 편 쓰라는 청탁서가 배달되더니/ 이튿날은 전화로/ 마지막이 될 줄 모르니 꼭 써달라는 것이다.// 누가 들으면 그걸 가지고 뭘 야단이냐고 하겠지만/ 이 땅에서 시를 써오면서/ 詩雜誌 하나를 열세 해 동안 이끌어오면서/ 청춘은 깡그리 접어 두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과/ 당뇨에 현기증이 매어달려 허덕이던/ 主幹 全鳳健은/ 아직도 재래식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 얼마나 답답하였으면/ 돌밭을 헤메게 되었을까 그걸 생각하면/ 손끝이 다 저리다./ 서울 서대문 충정로/ 어떻게 가리켜야 그 위치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몇 차례 골목길을 굽어/ 이발소가 있는 2층을 오를 양이면/ 그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의 슬픔과 먼저 만나게 되고/ 문 열면 다시 이마가 닫는 서글픔과 만나게 된다./ 한 모서리 마주한 책상 두 개/ 그 많은 시인들의 진한 손때와/ 겨울이면 가난하기도 하는 석유난로의/ 석유 냄새는 그렇게도 유별났던지/ 해는 午正을 넘었는데/ 유리에 바른 쓰다 버린 원고지/ 끄름으로 다스린 기막힌 흔적/ 그렇게 13년을 버티어 왔건만/ 그 세월 그 세월이고 하지만/ 낙엽을 밟고 돌아가는 우리의 뒷모습/ 싸락눈이 쌓이더니/ 달무리지는 싸락눈이 하얗게 쌓이더니/ 電線을 타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 한 편의 청탁은/ 나의 늑골 하나를 흔들고 모자라/ 이러한 넋두리 대신 하는 기막힌 사연을/ 무엇으로 다시 대신할까//

해지는 소리 / 박양균
초겨울 해 질 무렵/ 銀杏 나무 아래에 서면/ 달빛 조각이 떨어지고 있다./ 쌓이는 달빛을/ 차마 벗어낼 수가 없어/ 나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돌로 굳어가면서/ 산너머/ 해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치과에서 / 박양균
1/ 노란 개나리를 대하면/ 갑자기 어금니가 쑤신다.// 며칠을 두고/ 치과를 드나들 제면/ 하얀 턱받이를 한 어린것의/ 이마에 생땀이 젖어 있고/ 의사 이마의 반사경에는/ 이제 막 핀 개나리가 한창 여울고 있었다./ 지켜보던 保母의 옷깃에/ 노란 물결이 일고 있었다./ 반쯤 담긴 약병이 울렁이고/ 어린것의 충치는 이래서 쑤시기 시작하였을지도 모른다.// 2/ 노란 개나리를 대하면/ 갑자기 어금니가 쑤신다.// 서대문이나/ 혜화동 네거리쯤 해서/ 아낙네의 머리 위에 탐스럽게 핀 개나리// 식민지를 이고 오는/ 鋪道에는 바다소리가 난다/ 꽃무늬의 파도 소리였을까/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회담장소에 임하는/ 어느 領首의 어금니가/ 이즈음 쑤시기 시작하였을는지도 모른다.//

다리는 건너야 하겠소 / 박양균
다리는 건너야 하겠소/ 당신의 부르심이 못마땅하기는 하나/ 그래도 다리는 건너야겠소/ 다리는 돌다리/ 눈이 덮였소/ 그것은 분명 산 것의 입김이오// 다리는 건너지 말아야 하겠소/ 두 다리의 方向을 알 수 없소/ 그렇게도 말리던/ 가을 감나무의 마지막 까치 먹이가 달린/ 가지를 휘어잡았소/ 감나무 가지 끝에 아득히 김이 오르고 있었소/ 그 다음은 기억에 없소/ 어느 기막히던 戰線/ 선혈에 김이 오르고 있었소/ 그러나 그 자리를 기억할 수가 없소/ 다리를 건너는 것은 참 헛된 일이오/ 다리를 건너야 하는 屬性이 못마땅하오/ 그러나 다리는 건너야겠소/ 당신이 불러서가 아니라/ 그 까막한 기억을/ 그러나 정말 헛된 일이오/ 다리는 건너지 말아야 하겠소.//

해동에는 / 박양균
강변의 解冬에는 / 삼년생 포플러가/ 鶴의 울음으로 운다./ 버선발로 거니는/ 멀고도 긴 기다림의/ 대청마루에는/ 오늘도 강변 바람이 불고/ 忍從의 옷자락에/ 산그늘 가득히/ 물살을 이루는데/ 解冬의 街兵 포플러는/ 흰 옥양목으로 갈아입고/ 鶴의 걸음으로 간다.//

하오의 강의실 / 박양균
下午도 느지막이/ 강의실에는/ 더러는 섭섭히 대한/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가벼운 후회 같은 午睡의 틈 사이를/ 바람도 하 심심하여 물러갔는데/ 철 어긴/ 나비 한 마리 날아들었다./ 책장은 모두 무겁게 닫았고/ 老敎授의 강의에는/ 나비 한 마리 앉을 자리가 없다.// 얼마나 날았을까./ 나래깃은 자꾸만 아래로 자물질하고/ 오른쪽으로 처진 板書의 행렬들은/ 나비의 피로보다 앞선다./ 더러는 섭섭히 맞이한/ 그런데도 손끝은 제물에 풀리어/ 누가 떨어뜨렸을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 박양균
통근버스를/ 놓치지 않았던들/ 나는 지금 이 시간/ 흑판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게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다음 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잃은 시간이기보다는/ 남은 시간인지도 모른다.// 채워질 수 없는/ 저 만큼의 빈거리에/ 이런 시간이 이유가 되어// 가로수는 한참/ 낙엽을 정리하고/ 내가 朝刊의 생일처럼// 오늘에 부쳐/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것이다.//

바람 / 박양균
산즘생이거나 날즘생 더러는 죽고 멸한 것 바위 돌 할 것 없이 어울려 한 개 소리로 남는 것은 바람이어라 모두 바람이어라.// 어제가 주는 몸부림이어라 무게로 옮아오는 피의 자욱 오늘을 意味하는 고함이어라 바람이어라.// 손톱이 까맣도록 파헤친 산자락에 허리가 굽도록 밭을 이룩하였어라 옹기종기 인간은 이웃하여 한줌 흙 우러러 희뿌린 한 줌 티끌로 돌아가는 歲月이어라 바람이어라.// 눈이 따갑도록 흘러가는 歲月속에 솟구치는 이웃의 標識 흘러가는 아우성이어라 耳目口鼻가 사람이면서 내가 아닌 여럿이어라 바람이어라.// 이렇게 너와 나의 分別이 용납되지 않는 바람 속에 그래도 뉘가 알뜰히 발돋움하여 일르는 소리는 차라리 땅에 업디어 들어라 숨가쁜 오늘의 證言이 여기 있고나.// 잊혀지지 않는 여럿의 몸짓이 나붓거리는 絶頂에서 깃발처럼 꽃바람을 휘여잡고 熱한 바람속에 하나로 굳어 가는 것은 다시 흘러가는 이웃에의 祈禱이어라 바람이어라,// 산 것들 더러는 어차피 살다 가야 할 것들 지친 생선의 눈알처럼 充血된 隊列에 어울려 오직 한 뼘의 손자욱이 尺度하는 서로의 溫氣 속에 그래도 소리로 남기는 것은 바람이어라 모두가 바람이어라.//

연꽃 / 박양균
하나의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집단에서처럼/ 그것은 어쩌면/ 뜨거운 신음같은 것/ 차라리 입상같이/ 차며/ 향기가 없는 미련한 몸짓.// 잔잔한 물결로 하여금/ 이끼가 뜨는/ 거기 보람은 두고/ 속으로 거두우기에 충실하여/ 무거이 가라앉은 꽃이라.//

겨울의 복사꽃 / 박양균
1/ 하늘은/ 세찬 바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옛 그림자처럼/ 저녁 연기는/ 빈 가지의 손목을 잡고 있는데/ 서녘 햇살이/ 마구 복사꽃을 날리고 있다.// 2/ 겨울의 복사꽃을 보라/ 천년의 휴식같이/ 서녘 하늘의/ 불을 보아라/ 하늘을 가르는/ 저 바람 소리를 들으라/ 안식의 밤이/ 밤의 무릎을 적시며/ 마지막 신불을 벗는데/ 겨울에 마구 지는 복사꽃을 보아라//

과수원에서 / 박양균
일렁이는 바람소리 속에/ 익어가는 능금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구 가장자리를/ 무게를 더해가고 있다.// 빈 들녘/ 가득한/ 미소// 능금나무의 빛나는/ 얼굴들에/ 태양이 익어간다./ 하늘 한자락이/ 손에 닿는다.// 과원은 바다처럼/ 일렁이더니/ 능금의 얼굴에는/ 생선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다.//

낙과 / 박양균
떨어지는 과일은 제 무게만큼의 速度로만 떨어지는 것은 아닐게다.// 내가 그것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힌 채 쉽사리 주워들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은 그 무게나 速度만큼의 숨자리를 찾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면 도래질을 하다가 한이 덜찬 어린 것이 그대로 잠이 든 베개머리에서 내가 微笑지으며 落果의 빈 허허로움에 한참을 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으로 따진다면 청승스러울만치 고요한 어린 것의 숨자리는 차라리 떨어져 한 줌 소리로 남는 과일의 生成에 비길 것으로 내 이제 숙연히 그 어린 것의 베개맡을 지키지 못하고 微熱(미열)을 느끼는 것은 이승의 소리로 하여 充滿 하는 산 것의 무게 만큼이나 따사로움에 끝내는 果園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때를 이렇게 허리를 굽혀 떨어진 과일을// 쉬 주워들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입상 / 박양균
지구가 도는 것이 눈에 보인다면/ 그것은 꼭 그렇게 돌고 있었다.// 모양 지을 수 없으면서도/ 빈 주먹을 쥐어볼 양이면 무엇인지 체온이 오고/ 눈짓으론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따시한 것이라 생각해 보았으나/ 구태여 찬 것이라 여겨지기만 한다.// 그건 없는 고향처럼 그리워지는 것이었으며/ 그와 나는 또한 그러한 거리만은 언제나 보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때로 터지는 열매알 같은 보람은 있었으나 그 아련함에 다하지 못할/ 젊음의 안타까움이 있어 직접적인 대결을 작업하던 날// 그것은 내게 와 정지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만져 볼 수 없는 것이었으며 모양 지울 수도 없는 것이었으며/ 아무런 촉감도 느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실은 하나의 점으로서 나의 가슴 한복판에 와 부딪치곤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야 다시는 메꿀 수 없는 허전한 공간에/ 가슴의 그 무거운 점과 나는/ 가장 가까운 거리를 가지게 되면서// 그건 움직일 수 없는/ 또한 잇닿을 수 없는 立像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곁에서 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도 없이 돌고 있는 것이었다.//

 



박양균(朴暘均, 1924년~1990년) 시인
경북 영주(순흥)에서 태어나 1950년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중, 1952년 《文藝》에 <창>, <계절>, <꽃> 등으로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첫 번째 시집 <두고 온 지표>, 두 번째 시집 <빙하>를 간행한 뒤 20여 년간 과작(寡作)으로 일관하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치과에서>, <낙과> 등의 문제작을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7년간의 교편(대구여상·원화여고·대포고등공민교·경북대학·효성여대) 생활과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한국문인협회 이사, 영남일보 전무 겸 논설 주간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두고 온 지표> <빙하> <일어서는 빛> <전시장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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