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는 내리는 게 아니라 태어난다. 태어나는 순간에는 자진(自盡)한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다. 직립으로 생을 마치는 비의 강렬하리만치 단순한 생 앞에서는 모든 것이 고개를 숙인다. 대지를 북가죽처럼 두드리는 비의 기세를 바라보면서 나무가 곧다, 깃대가 곧다, 탑이 곧다, 사람도 그러할 수 있다고 되뇌어 본다. 수평이 주는 평온을 마다하고 수직의 고통을 잃지 않으려는 것은 지조일까, 오기일까. 여름의 무더위를 식힐 겸 정자의 고향인 함양을 찾았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함양으로 가는 길은 몇 구비를 돌고 돌았다.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계곡도 뱀처럼 휘돈다. 물길과 찻길이 굽으니 마을 골목도 반달처럼 굽고 주민들의 발걸음도 느릿해 보인다. 백 개가 넘는다는 정자조차 눈발같이 흩뿌리는 계곡수 곁에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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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2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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