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군가에게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든다는 걸.// 우리는 말했다 / 천양희 함께 있어도 거리를 지키는 벼가 있다/ 우짖음으로 자신을 지키는 새가 있다/ 울음소리로 존재를 알리는 벌레가 있다/ 하루에 몇십만번 물결치는 파도가 있다/ 물살이 역류하는 개울이 있다/ 나무 위에 사는 나무가 있다/ 잎끝에 돌기를 가진..

어머니 / 김초혜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알아/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어머니 2 / 김초혜 우리를/ 살찌우던 당신의/ 가난한/ 피와 살은 삭고/ 부서져 허물어지고// 한 생애 가시어/ 묶여 살아도/ 넘어지는 곳마다/ 따라와/ 자식만 위해/ 서러운 어머니// 세상과/ 어울리기/ 힘든 날에도// 당신의 마음으로/ 이 마음 씻어/ 고스란히 이루어냅니다.// 어머니 3 / 김초혜 엎어지고/ 두려워도/ 편히 잠들고 깨서// 즐거운 새날이/ 되게 하시던 어머니/ 무덤에 볼을 대고/ 귀 기울이면/ 아직도 이별 못한/ ..

이렇게 나는 오늘도 / 김동리 오늘 아침엔 월급봉투로 연탄을 들이고/ 어저께는 문인협회의 위원에 뽑혔습니다/ 내일엔 다방에 나가 악수를 널어놓고/ 저녁때엔 어느 편집장과 술을 마실 예정입니다/ 지난해엔 둘째아이의 임파선 수술을 보았고/ 이달엔 '섰다'에 미쳐 밤을 새고 다닙니다/ 시는 어려서부터 일찍이 손을 대인 것/ 소설은 약관에 이미 당선이 되었지만/ 아직 어느 나무 그늘 아래도 내 마음 쉴/ 의자 하나 놓여 있지 않습니다/ 봅소서, 나를 지키는 그대의 맑은 눈동자/ 앉으나 서나 가나 머무나 언제 어디서고/ 나에게서 떠남없는 그대의 영원한 눈길이여/ 이제 나는 머리가 벗겨지고 등이 굽은 채/ 서울역이나 서대문 가는 전차를 잡으려고/ 동대문 모퉁이를 헐덕이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봅소서, 이렇게 나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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