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피린 한 알 / 김상영
고추가 화근이었다. 독이 오른 고추는 한물이 되자 벌겋게 달아올랐다. 눌어붙기 전에 얼른 집어 먹어야 하는 화력 센 불판 같은 고추밭이었다. 붉고 튼실한 고추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손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풍요로운 농사여서 좋다곤 하나 사흘 도리 따야 하는 고추라 몸이 지쳤다. 무더운 날씨에 고랑에 쪼그려 앉아 포대기를 채우다 보면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는데 더디기는 흡사 명절날 귀성 차량 막히듯 했다. 불룩해진 고추 포대기를 들어내 경운기에 싣는 것도 버겁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명색이 뜀박질을 즐기며 체력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다는 신념으로 살아 온 체면에 빌빌댈 수는 없었다. “엉거주춤하면 다친다, 배때기에 딱 붙여야 허리가 온전하니라.” 방학을 맞아 고추밭에서 이리저리 나대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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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2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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