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 노혜숙
그는 빗속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은 듯 뜬 듯,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이었다. 빗물이 얼굴에 스미면서 희미하던 이목구비의 윤곽이 선명하게 살아났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어쩌다 목이 잘렸을까. 어떤 파란의 시절을 건너 '얼굴박물관'의 구경거리가 되었을까. 오래전 바이욘 사원에서 보았던 자야바르만 7세의 형상을 닮은 듯도 했다. 세월의 푸른 이끼를 화관처럼 둘러쓰고 있었다. 순탄치 않았을 생의 긴 여정, 고요하고 묵직할 뿐 비극의 기색이라곤 없어 보였다. 내 눈가의 그늘을 읽은 듯 목 없는 부처가 침묵의 설법을 던졌다. '삶 너머 삶을 보라.' 한 줌 재가 되어버린 아버지가 떠올랐다. 입관 전 곱게 매만진 아버지의 얼굴은 평온했다. 다 놓아버린 사람의 무욕과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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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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