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사물에 관해 쓰려고 했다. 사물을 하나씩 불러보고 있었는데, 내 눈앞에 여자의 맨발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느새 나는 혼자 우기고 있었다. 맨발도 사물이라고요! 그 점을 설득하겠어요! 집에 오면 양말을 벗고 맨발이 된다. 내가 사물이라고 우기는 맨발은 이 맨발이 아니다. 집 안에 있는 태평스러운 맨발이 아니라, 외출복처럼 구두 안에 들어가 있는 당당한 맨발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내가 처음 맨발에 구두를 신고 외출한 날은 스물두 살의 여름이었다. 스타킹을 신었을 때와 달리 구두는 맨발을 찰싹 감쌌다. 발이 점점 끈적끈적해졌다. 샌들이 아닌 구두 속에서 맨발은 그다지 시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왜 좋았을까. 하나를 뺐다는 게 좋았다. 격식이 헐거워지고 살짝 흠집이 난 느낌도 좋았다. 그것은 ..

이성미 시인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문학과사회》에 〈나는 쓴다〉 외 3편의 시를 발표하여 시단에 나왔다. 김정환은 이성미의 시집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의 해설 〈변형하는 정신과 상상하는 육체의 변증법〉에서 이성미를 최승자의 뒤를 잇는 시인의 대열에 포함시켰다. 시로여는세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칠 일이 지나고 오늘》 《다른 시간, 다른 배열》 등이 있다. 칠 일이 지나고 오늘 / 이성미 한 사람이 가자 이어달리기하듯 다른 사람이 왔다. 그는 가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넘겨주었다./ 나는 파란 바통이 되어 …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칠 일이 지나고…// 오늘은 일곱 개의 태양이 뜬 날.// 오늘은 일곱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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