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동서문학상 은상 거울 앞에서 빗질을 한다. 처음에는 대담하고 큰 동작으로, 그 다음에는 작고 세밀한 손질로 머리를 빗는다. 유난히 숱이 많고 긴 탓인지 아무리 다듬어도 이내 헝클어지고 만다. 여러 번의 쓰다듬 끝에 깔끔한 정도는 아니지만 남들 눈에 지저분하지 않을 만큼 가지런한 모습이 되어간다. 참빗으로 골이 생기지 않게 촘촘히 쓸어내려진 머리카락이 피부에 닿는 것을 느끼며 얼굴 주위를 감싼다. 그 흑단의 물결 속에 두 눈을 담그면 검은 머리칼은 큰 파도가 되어 살아있는 내 주위의 모든 의식을 움켜쥔다. 곱슬곱슬한 머리, 구불구불한 머리, 삐죽삐죽 세운 머리, 땋아 늘인 머리, 손바닥처럼 매끄러운 민머리... 출렁이는 바다 안에 그 길이와 올의 굵기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모양이 만들어지는 컴컴한..

제10회 동서문학상 은상 “동네입구 가게 처마 밑에서 공기놀이 하던게 나는 제일 생각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동창모임에 간 날, 먹때왈이란 별명을 가졌던 친구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먹때왈은 여름에 밭에서 많이 볼 수 있던 까만색 앙증맞은 열매로 까마중의 사투리다. 눈동자가 새카맣고 야무졌던 친구를 동네 사람들은 먹때왈이라 불렀는데 그 친구는 유난히 고향에 대한 정이 깊었다. 처마란 말 때문이었을까. 공기놀이란 말 때문이었을까. 여섯 명 친구들의 표정도 어느새 유년으로 돌아간 듯 얼굴마다 그리움이 가득 번져나고 있었다. “맞아. 가게 집 처마 밑에 어지간히 들락거렸지. 학교 끝나면 와르르 몰려가서 공기놀이 하고 핀 따먹기 하고 놀았던 걸 어떻게 잊겠어.” “그 뿐이야. 갑자기 비가 오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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