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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처미 / 장미숙

부흐고비 2022. 3. 2. 08:57

제10회 동서문학상 은상

“동네입구 가게 처마 밑에서 공기놀이 하던게 나는 제일 생각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동창모임에 간 날, 먹때왈이란 별명을 가졌던 친구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먹때왈은 여름에 밭에서 많이 볼 수 있던 까만색 앙증맞은 열매로 까마중의 사투리다. 눈동자가 새카맣고 야무졌던 친구를 동네 사람들은 먹때왈이라 불렀는데 그 친구는 유난히 고향에 대한 정이 깊었다. 처마란 말 때문이었을까. 공기놀이란 말 때문이었을까. 여섯 명 친구들의 표정도 어느새 유년으로 돌아간 듯 얼굴마다 그리움이 가득 번져나고 있었다.

“맞아. 가게 집 처마 밑에 어지간히 들락거렸지. 학교 끝나면 와르르 몰려가서 공기놀이 하고 핀 따먹기 하고 놀았던 걸 어떻게 잊겠어.” “그 뿐이야. 갑자기 비가 오면 가장 피하기 좋은 곳도 그곳이었잖아. 그때가 정말 좋았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이사를 가버렸던 친구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모두 추억을 더듬는지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고향집 처마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마는 집의 바깥쪽 기둥을 연결한 선에서 지붕 끝까지의 서까래 아래 부분을 말하는데 한옥에서 처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체적으로 집의 모양을 완성하는 미적인 아름다움도 있지만 햇빛의 양을 조절해서 집안의 온도를 균형 있게 맞춰주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햇빛을 차단하고 바람을 조절해서 시원함을 더해주고, 겨울에는 햇빛을 모아두었다가 집안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처마는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고, 나눔의 공간이었으며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마를 보면 인심 넉넉한 어느 집 아낙네가 떠오르고 올망졸망 커가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떠오르고 알뜰살뜰 살림을 일구어 나가는 바지런한 촌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방과 마루, 기둥과 지붕 등 집의 몸채가 강직하고 듬직한 가장을 닮았다면 처마는 품어주고 다독여주고, 알콩달콩, 오순도순 나누며 살아가는 아낙네의 모습을 닮았다.

집 전체의 무게를 실은 기둥을 받쳐주는 주춧돌과 안정감 있게 균형을 잡아주는 기둥,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집 전체를 보호하는 지붕이 가장처럼 듬직하다면 처마는 자식들의 등을 도닥거려주고 자식들의 아픈 마음까지 감싸주는 포용력이 넓은 어머니들의 품성과 흡사하다. 야무진 손끝으로 엮은 먹을거리를 찾아오면 부침개라도 부쳐내던 살뜰한 인정이 처마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런 처마를 생각하면 어느새 어머니의 삶이 가슴속으로 밀려들어 온다.

지난해 고향에 갔을 때 고향집 처마 밑에는 양파와 마늘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자식들과 친척들에게 나눠주고 더러는 팔고 남은 것들 중 좋은 것만 골라 종자로 쓰려고 걸어둔 마늘과 양파에서는 맵싸한 냄새가 났다. 그밖에도 처마 밑에는 눈에 익은 물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벽에 걸린 호미, 어레미, 키, 낫이며 갈퀴, 삽, 기제 등 농사도구에서부터 작고 큰 소쿠리들과 헌 찬장, 고물자전거까지 처마 밑에 한 살림이 그득했다. 그 많은 물건들을 차곡차곡 쟁여놓고도 처마는 여유가 있는지 바람을 키워 사방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처마까지 가지를 뻗은 키 큰 감나무에 걸린 햇살이 처마를 기웃거리는지 벽 한쪽에 감나무 그림자가 너울거렸다. 댓돌위에 나란히 놓여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흰고무신에서는 잘 익은 햇살냄새가 났다.

처마 밑에는 아직도 노란 장판을 위에 깐 작은 평상이 있었다. 세월 따라 쓸모가 변해버린 평상위에는 수동식 농약분무기, 노란 장화와 토시, 목이 긴 구멍 난 양말, 챙이 넓은 모자 등이 놓여있었다. 처마 밑에 놓아둘 정도로 작은 평상이 한때는 우리에게 수많은 꿈을 심어주었던 넓고 아늑한 공간이었음을 상기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향집은 몇 번의 수리를 거쳐 지금은 좌우대칭이 맞도록 거듭났지만 예전 고향집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본채가 헛간과 지붕을 맞대고 있어 본채는 오른쪽 처마보다 왼쪽 처마가 훨씬 넓었다. 툇마루가 좁았던 탓에 아버지는 우리에게 작은 평상을 하나 만들어 줬는데 처마 밑에 두면 딱 알맞은 평상을 우리는 무척 좋아했다. 처마 밑 평상에 누워 봄에는 새싹들이 도란거리는 소리를 듣고, 여름이면 매미울음소리를 자장가삼아 낮잠을 잤다. 가을이면 감나무에서 익어가는 감을 헤아리며 친구에게 빌려온 책을 읽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발들을 대고 있으면 빗물은 발등에 떨어져 아우성을 치며 사방으로 튀어 달아났다. 처마 밑에 있던 아궁이의 가마솥 뚜껑에서는 호박부침개가 익어가고 부침개를 부치던 어머니는 가끔씩 낙숫물이 가득 찬 양동이의 물을 퍼내기도 했다. 처마 밑 평상에서 먹던 호박부침개에는 우리를 키워준 자연의 모든 소리와 냄새가 들어 있었다. 처마는 계절과 함께 분위기도 달라졌다. 해가 비치는 방향에 따라 지붕의 그림자가 그네를 타는가 하면 맑은 가을밤에는 달빛과 별빛이 내려와 오래된 전설을 풀어놓고 가기도 했다.

또한 처마가 인정과 따뜻함이 녹아있던 장소로 기억되는 건 어머니의 남다른 성격 때문이다. 당시만해도 동냥을 하던 사람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숙식을 해결하곤 했는데 우리 집에도 어느 날 객이 찾아 들었다. 씻지도 못한 듯 지저분한 옷차림을 한 객이 처마 밑에서 자고 있는 걸 본 나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어머니는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다. 처마 밑에 멍석과 담요를 깔아주던 어머니는 그들의 잠자리가 될 처마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들은 한동안 우리 집을 드나들었고 덕분에 내게는 처마에 그려진 추억 하나가 더 따라붙게 되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제비도 곧잘 처마 밑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하필 제비가 집을 지은 곳이 툇마루 바로 위여서 제비가족의 적잖은 제비 똥을 피할 수가 없었다.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 동생이랑 공부를 하다가 무방비상태로 제비 똥 세례를 받기 일쑤였다. 게다가 툇마루의 틈 사이로 스며든 제비 똥은 처리하기도 힘들었다. 어느 날, 제비 똥 때문에 화가 난 동생은 긴 막대기를 흔들어댔다. 어머니는 동생에게서 막대기를 빼앗는 대신 제비가 편하게 똥을 쌀 수 있도록 제비집 바로 밑에 장판을 깔아두었다. 제비가 한결 편하게 볼일을 보게 되면서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가벼워졌다.

처마의 넓은 품을 우리에게 내주며 등을 도닥거려주던 어머니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어머니와 처마는 내게 하나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아파트에 살면서 처마가 그리울 때면 종종 고향집처마를 찍은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날도 더러 만난다. 그런 날은 마음속에 있는 처마가 씀벅씀벅 몹시도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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