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자기 비슷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버릇이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자기 비슷하게 만들려고 하는 노력을 사람들은 흔히 사랑 혹은 애정이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애착의 도(度)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착각의 도도 높아진다. 그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면, ‘애정을 쏟았으나 상대방이 몰라주었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우정이든 성정(性情)이든 진정한 애정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데서 비롯된다.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을 가능한 한 편안하게 해주려는 노력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떠나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생각하면 자명해진다. 우리가 조선의 백자 촛대 하나에 애착을..

기항지(寄港地) 1 / 황동규 걸어서 항구(港口)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한지(寒地)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 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중의 어두운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개(數三個)의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기항지(寄港地) 2 / 황동규 다색(多色)의 새벽 하늘/ 두고 갈 것은 없다, 선창에 불빛 흘리는 낯익은 배의 구도(構圖)/ 밧줄을 푸는 늙은 뱃군의 실루에트/ 출렁이며 끊기는 새벽 하늘/ 뱃고동이 운다/ 선짓국집 밖은 새벽 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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