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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유언서 / 전시륜

부흐고비 2008. 2. 12. 20:32

 

유쾌한 유언서

제가 죽은 후 재혼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좋은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여자 없는 남편은 반쪽이라고 하니까 남자 없는 여자도 모자라는 인간이겠지요? 당신이 모자라는 인간이 된다면 저는 땅 속에서 눈물을 흘릴 게 아닙니까.

젊었을 땐 성행위가 있어야 소화가 잘 되듯이 노년에도 서로 기대고 의지할 반려자가 필요합니다.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 깔깔 껄껄 웃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시오. 내가 코를 골 때마다 당신에게 두통이 온다니까 먼저 코를 고느냐고 슬쩍 물어 보십시오.

오비드가 쓴 “연애술법”이라는 책은 남편을 낚는 온갖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제발 그 책을 한 번 읽으십시오. 예를 들면 “장례식은 꼭 우울해야만 된다는 법은 없고 오히려 이곳을 새 로맨스의 시발점으로 생각하라”고 도사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심에서든 인위적이든 당신은 슬픔을 가장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만 하면 됩니다”라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여인보다 이 세상에서 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객으로 온 신사 홀아비가 당신과 화촉을 밝히고자 제안해 올 수도 있습니다.

재혼을 할 경우 남편과 살은 섞되 은행장부는 섞지 마십시오. 유언을 남길 경우 당신 재산의 최소한 반을 아이들 명의로 남기십시오. 깨지기 쉬운 달걀을 모두 한 바구니에 속에 담는다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아이들과 좋은 친분을 유지하십시오. 애들이 커서 결혼하여 자기 자식을 키우게 될 때야 정말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내 자식을 길러보지 않은 사람은 부모를 진실로 존경하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너무 철이 안 났다고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손자 손녀들이 생기면 꼬마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면서 소일하는 것도 좋겠어요. 그럴 경우 수업료를 단단히 받을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죽은 뒤 땅 속에 묻히게 된다면 비문을 어떻게 써달라고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심사숙고 끝에 이런 글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 충청도 촌놈이 묻혔습니다. 그의 일생의 소원은 사람들이 착각하여 그를 서울 신사로 보아주었으면 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좀 유치한 것 같아서 멘켐(H. L. Menkem)의 비문을 꾸어다 쓸까 합니다.

“내가 이 속세를 뜬 뒤,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내 유령을 즐겁게 해주겠다는 분이 있으면, 죄인을 용서하고 못생긴 아가씨에게도 윙크를 던져 주십시오.”

그럼 소인은 물러갑니다. 오래오래, 길이길이 잘 사십시오.

“어느 무명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저자:전시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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